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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15>범죄경제학 

한양경제 2025-08-18 11:32:39
범죄는 충동일까, 선택일까?
범죄를 경제학으로 분석한다는 말은 다소 낯설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 (Gary Becker)는 범죄를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지 말지를 결정할 때, 범죄로 얻는 이익과 적발될 경우의 비용을 계산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범죄도 투자 의사결정처럼 편익과 비용의 비교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범죄경제학의 핵심은 기대효용 함수다. 범죄자가 범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U₂)과, 범죄가 적발될 확률(p), 그리고 처벌받을 경우의 손해(U₁)를 비교해 행동을 결정한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여기서 E(U)가 양수라면, 범죄자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단순한 틀은 범죄 억제 정책을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예컨대 범죄의 보상은 크지만 단속 확률이 낮고 처벌 강도까지 약하다면, 누구든 범죄를 저지를 유인이 커진다. 반대로 단속 가능성이 높고 형벌이 확실하게 집행된다면, 범죄의 기대수익은 급격히 낮아진다. 

이 관점에서 자주 인용되는 것이 뉴욕의 ‘깨진 유리창 이론’이다. 작은 범죄를 방치하게 되면 ‘잡히지 않는다’는 기대가 커져 더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뉴욕시는 1990년대 경범죄를 강력히 단속했고, 실제로 범죄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범죄 비용을 체계적으로 높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음주운전도 예전에 비해 최근에는 단속 빈도도 높아지고 처벌도 강화되어 음주운전 사고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는 범죄의 ‘기대비용’을 높여서 범죄를 억제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또 단순히 처벌을 강화하는 것보다 적발 확률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CCTV 설치, 내부 고발자 보호, 금융감독 시스템 강화 등은 범죄의 기대효용을 낮추는 방식이다. 

범죄경제학의 이론은 화이트칼라의 범죄를 잘 설명해 준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기업 경영자나 고위 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횡령, 담합, 뇌물 수수 등을 저지르는 것으로, 높은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반면에 낮은 적발과 처벌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한국에서는 대기업 총수, 정치인, 공직자의 범죄가 반복적으로 발생했지만 ‘경제적 기여’나 ‘정치적 이유’로 집행유예, 벌금, 사면 등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범죄의 위험 대비 수익이 높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사회적 불신과 경제 효율성을 저해하는 악순환을 형성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뿌리 깊은 인식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화이트칼라 범죄자에게는 낮은 범죄 비용, 서민 범죄자에게는 높은 범죄 비용이 부과되는 불균형 구조를 야기하여, 결국에는 사회 전체의 신뢰가 무너지고, 합법적 경제 활동에 대한 유인이 줄어들게 만든다.  

범죄는 단순한 도덕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 제도와 정책이 만들어낸 ‘합리적 선택’의 산물일 수 있다. 범죄자가 손익을 따져보고, 이익이 손해보다 크다고 판단할 때 범죄는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회는 그 계산이 성립하지 않도록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범죄가 ‘손해 보는 선택’이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범죄경제학이 말하는 진짜 해법이다. 따라서 범죄 예방은 단속과 형량 강화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오히려 정직하게 사는 편이 경제적으로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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