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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16> ‘기본소득제’와 복지경제학

한양경제 2025-08-25 11:29:08
‘기본소득제’의 경제학적 유래는 단순한 복지 아이디어를 넘어, 수백 년에 걸친 철학적·경제학적 논의에서 비롯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기원은 16세기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모든 시민에게 최소한의 생계 보장을 제안한 데서 시작된다.  

이후 18세기 토머스 페인은 토지 공유 개념을 바탕으로 성인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자는 주장을 펼쳤고, 20세기에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음의 소득세’ 개념을 통해 저소득층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제안했다.이러한 사상들은 오늘날 기본소득 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일반적으로 ‘기본소득제’는 모든 국민의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국민 개개인에게 조건 없이 동일한 금액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기존의 복지제도가 소득 수준, 취업 여부, 가구 형태 등 특정 요건을 충족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선별적 복지’라면, 기본소득은 이러한 자격 심사 없이 전 국민이 균등하게 받는 ‘보편적 복지’라는 점에서 구별된다. 핵심 개념은 △무조건성(취업·소득·재산과 무관) △보편성(모든 국민이 대상) △개별성(가구 단위가 아닌 개인) △정기성(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지급) △현금성이다.  

‘기본소득제’는 몇 가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첫째, 기술 발전과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미래에 대비해 최소한의 소득 안전망을 구축한다. 둘째, 선별적 복지의 사각지대와 낙인 문제를 줄인다. 셋째, 복잡한 행정 절차를 단순화해 효율을 높인다. 마지막으로, 경제 침체기에 소비를 뒷받침하고 내수를 진작하는 효과를 기대한다.  

‘기본소득제’ 도입 논의는 소득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비롯됐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의 확산으로 일자리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노동소득만으로는 안정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계층이 늘고 있다. 기술 발전과 자동화는 고용의 불안정을 초래했고, 기존 복지제도는 이러한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코로나19 시기에 시행된 전 국민 재난지원금과 최근의 소비쿠폰 지원 경험은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정책을 기본소득제의 사전 실험 혹은 유사한 제도로 평가하는 해석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두 정책은 목적과 구조, 지속성 면에서 명확한 차이를 가진다.  

소비쿠폰은 단기적 경기 부양을 위한 처방으로 특정 시기에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 동안만 제공되며, 재정 지출을 통한 소비 촉진과 내수 진작을 주된 목표로 한다. 지급 방식 역시 현금 외에도 지역화폐나 사용처가 제한된 쿠폰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반면 기본소득은 단순한 소비 촉진을 넘어 빈곤 해소, 소득 불평등 완화, 인간의 기본적 삶을 보장하는 복지 정책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기본소득은 재정 구조의 전면 개편과 철학적 합의를 전제로 하는 복지체계 전환의 문제이므로, 현행 소비쿠폰 정책을 기본소득제의 시작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다.  

‘기본소득제’ 도입에 대한 찬반 논쟁은 뜨겁다. 찬성론은 미래의 일자리 축소와 불평등 심화를 막기 위해 보편적 소득 보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기본소득은 낙인 없이 누구나 당당히 받을 수 있고, 소비 안정 효과가 커서 경기 대응에도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반대론은 재원 마련의 현실성을 문제 삼는다. 연 수십 조에서 수백 조 원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대폭적인 증세가 불가피하다. 또, 무조건적인 현금 지급이 노동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고, 기존의 맞춤형 복지보다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들고 있다.

최근 여러 나라의 기본소득 실험은 공통된 성과와 한계를 보여준다. 핀란드는 실업자에게 월 560유로(약 80만 원)를 지급해 행복감과 정신적 안정, 정부 신뢰를 높였지만 고용 확대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미국 스톡턴시는 저소득층에 월 500달러(약 65만 원)를 지원해 취업률과 재정 안정성이 향상됐고, 케냐는 장기 지급으로 빈곤과 아동 영양을 개선했다. 

그러나 스위스는 성인 매달 2500프랑(약 350만 원) 지급안을 국민투표에 부쳤으나 재정 부담과 근로 의욕 저하 우려로 부결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도 정권 교체로 중도 폐지됐다. 결과적으로 기본소득은 심리적 안정과 소득 불안 완화에 강점이 있지만, 막대한 재원 마련과 정책 지속성이 최대 난관임이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소득 논의는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면서 ‘조건 없는 현금 지급’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공론화됐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청년 기본소득’, ‘농민 기본소득’ 형태로 부분적 시행을 하고 있다.  

다만, 국가 차원의 전면 도입은 막대한 재정 부담과 조세 개편, 기존 복지제도와의 관계 조정 등 현실적 과제가 크다. 이에 따라 ‘보편 지급’ 대신 일정 범위·연령·조건에 한정한 ‘준(準)기본소득’이나 ‘기본소득형 사회배당’이 절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기본소득 논쟁의 주된 쟁점으로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하나? 부자들에게도 돈을 줘야 하나? 매달 돈을 공짜로 받으면 일 할 생각이 날까?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제도보다 더 나을까?” 등을 들 수 있다.  

결국, ‘기본소득제‘는 단순한 현금 지급을 넘어 사회의 경제 구조, 노동 개념, 조세·재정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내포하는 제도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사회 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이 될 수 있으나, 지속가능한 재원 마련과 사회적 합의가 선행 조건으로 요구된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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