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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73> 월야유정(月夜有情) ④

한양경제 2025-10-15 09:49:14
청정(淸淨)과 광명(光明), 유현(幽玄)과 적막(寂寞) 그리고 상실과 고독의 정조(情操)를 품은 달은 조선시대 문인묵객과 기생들의 시조 문학에서 더 의미심장한 빛을 발휘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명기(名妓) 황진이의 시조는 푸른 산과 계곡을 배경으로 밝은 달의 회화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변함없는 자연과 한시적인 보름달을 대조해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며 은근한 찰나적 유혹을 드러내고 있다. 유현(幽玄)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월광 판타지의 마력은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물레방앗간에서 하룻밤 풋사랑의 인연을 맺는 배경을 이루는 한편 평생 잊을 수 없는 애틋한 추억의 시공간으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달빛은 손인호가 부른 대중가요 ‘하룻밤 풋사랑’과 ‘울어라 기타줄’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을 한다.  

‘하룻밤 풋사랑에 이 밤을 새우고, 사랑에 못이 박혀 흐르는 눈물, 손수건 적시며 미련만 남기고, 말 없이 헤어지던 아~ 하룻밤 풋사랑’.  

‘낯설은 타향땅에 그날 밤 그 처녀가, 웬일인지 나를 나를 못 잊게 하네, 기타줄에 실은 사랑 뜨내기 사랑, 울어라 추억의 나의 기타여’.  

‘하룻밤 풋사랑’과 ‘울어라 기타줄’의 감성은 ‘메밀꽃 필 무렵’과 그 정서가 묘한 합일을 이룬다. 무상한 나그네 인생에서 하룻밤의 애틋한 인연은 찰나적이면서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 결영(缺盈)의 속성을 지닌 달의 위력이 반영된 것이다. 달에 관한 우리 한국인들의 오랜 체험적 심미적 공감의 결과이기도 하다. 기생 천금(千錦)이 읊은 시조는 고적한 달밤에 임 그리는 여인의 체념적 탄식이 짙게 배어있다.  

‘산촌에 밤이 드니 먼 데 개 짖어온다, 시비(柴扉)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空山) 잠든 달을 짖어 무엇하리오’. 

이같은 정조 또한 현대의 대중가요에도 반영됐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비 오는 밤 낙숫물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1955년 신민요 가수 황정자가 부른 ‘오동동 타령’이 그런 경우이다. ‘오동추야’(梧桐秋夜)는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는 가을밤’이다. 가을밤의 달빛은 다소 시리다. 시조의 온도와 일치한다.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란 대목에서 임이 올까 뛰는 가슴과 임을 그리는 애타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오지 않는 임의 빈자리는 공허한 하늘에 잠든 달과 정서적인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십오야 밝은 둥근 달이 둥실둥실둥실 떠오면, 설레는 마음 아가씨 마음 울렁울렁 울렁거리네, 하모니카 소리 저 소리 삼돌이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 떡방아 찧는 소리 저 소리 두근두근 이쁜이 마음’.  

1979년 혼성 보컬 그룹 들고양이들이 내놓은 ‘십오야’(十五夜)는 음력 보름날 밤의 서정이다. 경쾌한 가락에 맞춰 달이 둥실둥실 떠오르고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임의 빈자리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다.  

‘물어물어 찾아왔소 그 임이 계시던 곳, 차가운 강바람만 몰아치는데 그 임은 보이지 않네, 저 달 보고 물어본다 임 계신 곳을, 울며불며 찾아봐도 그 임은 간 곳이 없네’.  

1969년 나훈아가 발표한 ‘임 그리워’도 그렇다. 차가운 달빛은 임의 부재 상황을 웅변한다. 찾을 수 없는 임의 모습은 곧 무심한 달빛이다. 시조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요에서도 달은 정서의 유발과 감정이입의 친근한 소재로 등장한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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