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70>월야유정(月夜有情) ①
2025-09-17
조선 세종 때 6진(鎭)을 개척한 김종서가 북녘 변방에서 읊은 장수의 호방한 기개에는 시린 겨울 달빛이 서려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남긴 우국충절의 비장한 시조는 서늘한 한산섬 달밤이 빚어낸 전란의 감성이다. 그 서정성이 현대의 6·25전쟁 때 달빛 어린 전선에 선 병사의 내면 풍경으로 부활했다는 가정을 해본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그 목소리 그리워’.
신세영이 부른 ‘전선야곡’은 비록 장수가 아닌 병사의 심중으로 길어올린 전쟁가요이지만,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달빛 처연한 전선의 비극적 정서는 일맥 상통하는 것이다. 달빛이 자아내는 최일선 전쟁터의 문학적 감수성이다. 장수의 ‘우국충정(憂國衷情)’과 ‘견위치명(見危致命)’의 토로는 아니겠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장병의 애국심과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는 사모곡이 달빛 아래 비장하게 얽혀있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전쟁이 초래한 피란민들의 실향과 이산(離散)의 아픔을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의 2절 가사에는 초생달이 등장했다. 이 초생달 또한 부산에서의 피란생활과 망향의식이 배태한 설움과 슬픔을 대변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나도향의 수필 속에서 새벽녘 하늘을 비추던 그믐달처럼 온갖 풍상을 겪고 스러져가는 원부(怨婦)와 같은 달과는 다소 결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 그것은 상실의 아픔을 형상화 한 같은 조각달이기는 하지만, 재회의 보름달로 차오르는 희망의 여지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보름달을 지향한 초생달의 이미지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휴전선 달빛 아래 녹슬은 기찻길, 어이해서 핏빛인가 말 좀 하렴아, 전해다오 전해다오 고향 잃은 서러움을 녹슬은 기찻길아, 어버이 정 그리워 우는 이 마음’.
1970년대 초 남북간 화해 분위기에서 탄생한 ‘녹슬은 기찻길’을 조명하는 달빛은 차라리 핏빛을 머금었다.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20년이 지나도록 고착화 된 남북 분단의 상흔과 통한을 온몸으로 드러낸 녹슨 기찻길 위에 뜬 달이었기 때문이다.
분단의 아픔을 ‘월야유정(月夜有情)’으로 아우른 가요의 서곡은 휴전 이듬해인 1954년 가수 고대원의 데뷔곡인 ‘판문점의 달밤’일 것이다. 이 노래의 1,2,3절은 ‘뜸북새 울고 가는 판문점의 달밤아’ ‘적진을 노려보는 판문점의 달밤아’ ‘적막이 깊어가는 판문점의 달밤아’로 시작해 실향과 부모형제와의 이별을 한탄하다가 ‘어머님은 안녕 하신가’로 끝난다. 분단이 초래한 사모곡이자 망향가인 것이다.
1964년 4월부터 30년 동안 매일 정오 무렵이면 KBS 라디오 전파를 탔던 5분 반공 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에서 ‘눈물 젖은 두만강’ 시그널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던 시조풍의 넋두리가 있었다.
‘땅덩어리 변함없되 허리는 동강나고, 하늘빛은 푸르러도 오고가지 못하누나...’
이것을 월야유정으로 치환하면 ‘달빛은 하나인데 국토는 갈라진’ 쓰라린 분단의 탄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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