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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25>국가의 성공과 실패 요인

한양경제 2025-10-27 10:31:49
인류 역사에서 어떤 국가는 부와 문명을 누리며 안정된 사회를 이루고 있지만, 또 다른 국가는 빈곤과 폭력, 붕괴의 위기에 시달린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세 권의 책(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대런 애시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그리고 다이아몬드의 또 다른 저작 ‘문명의 붕괴’)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인류사의 불평등과 국가의 흥망을 탐구한다. 세 책은 분석의 초점과 인과의 방향에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지만, 공통적으로 문명의 성패가 단순한 운명이나 인종적 우열이 아니라 ‘구조적 조건’과 ‘인간의 선택’의 상호작용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총, 균, 쇠’는 인류 문명의 불평등을 인종이 아니라 지리적·환경적 요인에서 찾는다. 다이아몬드는 ‘총(무력과 기술)’, ‘균(면역과 질병)’, ‘쇠(금속 도구와 생산력)’의 세 요소가 문명 간 우열을 낳았다고 본다. 그러나 그 근본 원인은 인간의 우열이 아니라 자연환경의 차이라고 본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같은 환경은 농경과 가축화를 일찍 가능하게 했고, 이는 인구 증가와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  

반면 불리한 지역은 그만큼 발전의 기회를 놓쳤다. 다이아몬드에게서 인간은 거대한 환경의 조건 속에 놓인 존재이며, 역사의 인과는 환경에서 인간으로 향하는 일방향적 흐름이다. 인간의 역할은 제한적이며, 자연이 문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본다. 그의 분석은 인류의 불평등을 ‘자연적 조건’에서 설명함으로써 인종주의적 시각을 거부하고, ‘우연히 유리한 지리적 위치’가 장기적으로 역사적 격차를 만들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이론은 ‘인간의 제도와 선택’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인류의 흥망을 제도와 정치의 차이에서 설명한다. 환경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에 있다고 본다. ‘포용적 제도’란 다수 시민이 정치·경제 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재산권이 보장되며, 혁신의 보상이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체제를 말한다. 반대로 소수의 권력층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경제 활동을 억압하는 ‘착취적 제도’는 성장을 가로막는다.

즉, 포용적(inclusive) 제도를 가진 국가는 번영하고, 착취적(extractive) 제도를 가진 국가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애시모글루와 로빈슨에게 문명의 성패는 제도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이는 곧 인간의 의지와 책임의 문제다. 인과의 방향은 인간의 제도 설계→국가의 성공 혹은 실패로 향한다. 즉, 문명의 성패는 외부 조건보다도 내부의 권력구조와 사회적 규칙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문명의 붕괴’는 앞선 두 시각의 교차점에 서 있다. 다이아몬드는 이번에는 환경을 다시 들여다보되, 그것을 결정 요인이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로 본다. 환경이나 기후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야, 이스터섬, 바이킹 그린란드처럼 환경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사회는 몰락했고, 반대로 위기에 적응하고 협력한 사회는 생존했다. 

‘문명의 붕괴’의 핵심은 ‘환경’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사회적 대응 능력’이다. 인과의 방향은 ‘환경 압력→인간의 대응→생존 혹은 붕괴’로 확장된다. 인간은 이제 단순한 피해자나 설계자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조정자다. 따라서 ‘문명의 붕괴’는 단순한 환경결정론이 아니라, 환경과 인간의 의사결정이 상호작용하는 복합적 시스템으로서의 사회를 강조한다.  

이 세 책의 차이는 결국 문명을 바라보는 렌즈의 초점에 있다. ‘총, 균, 쇠’는 문명의 차이를 자연의 조건에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제도의 설계와 권력 구조에서, ‘문명의 붕괴’는 환경에 대한 사회적 대응에서 찾는다. 요약하자면, 첫째는 ‘환경이 문명을 만든다’, 둘째는 ‘제도가 국가를 만든다’, 셋째는 ‘대응이 문명을 살린다’는 명제로 정리할 수 있다. 

지금 인류는 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서 있다. 기후 위기, 불평등, 기술 독점은 과거 문명이 맞닥뜨렸던 위기와 닮았다. ‘총, 균, 쇠’의 시각에서 보자면, 지구의 환경 변화가 인류의 미래를 다시 재편하고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제도의 비포용성이 국가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문명의 붕괴’는, 위기의 본질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대응의 실패라고 말한다. 

세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기후위기와 사회 불평등의 문제는 “환경, 제도, 대응”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결과다. 결국 여기에 대한 해답은 세 관점의 통합 속에 찾을 수 있다. 환경의 제약을 인식하고, 포용적 제도를 구축하며, 공동의 대응 체계를 설계하는 것,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작동할 때, 문명은 지속 가능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결국 문명의 지속 가능성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도 인간이 얼마나 현명하게 제도를 만들고, 공동의 대응을 설계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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