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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75> 월하유정(月夜有情) ⑥

한양경제 2025-10-29 11:13:20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아 ~신라의 밤이여 아름다운 궁녀들 그리웁구나, 대궐 뒤에 숲 속에서 사랑을 맺었던가, 임들의 치맛소리 귓속에 들으면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현인의 노래 ‘신라의 달밤’은 ‘경주의 달밤’ 그 이상이다. 
‘신라의 달밤’은 우선 원만구족한 만월의 정서를 머금고 있다. 광복의 기쁨을 노래한 해방공간의 낭만가요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폭정에서 해방된 환희와 새 나라의 건설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신라의 달밤’으로 표현한 것은 경주가 천년 세월의 흥망성쇠가 스며있는 문화유산의 보고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의 달밤’을 노래하려면 먼저 달의 미학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달의 정체성은 차오름과 이지러짐의 끊임없는 연속이다. 부활과 쇠락의 가이없는 반복이다. 결영(缺盈)의 속성이다. 그래서 달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이고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무상(無常)이다. 그 다음에는 서라벌에서 흐드러졌다가 스러져간 ‘신라의 달밤’에 대한 깊은 관조가 전제되어야 한다. ‘신라의 달밤’은 백제 가요 ‘정읍사’의 서정적인 공간을 벌써 초월했다. 

‘신라의 달밤’은 향가의 종교적 심미감과 형이상학적 중량감으로도 설명이 부족하다. 우리 민족문화의 완결적인 서막이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달밤’에는 무엇보다도 불국정토를 지향했던 신라인들의 고차원적 세계관과 풍류와 원융의 인생관이 흠뻑 배어 있다. 나아가 ‘유불선(儒佛仙)’이 공존했고, 청정과 광명, 유현과 적막의 정서에다 개방과 포용, 도전과 혁신의 정신까지 지니고 있었다.  

황룡사와 에밀레종, 불상과 석탑 그리고 금관과 토기를 비추던 달빛을 읽어야 한다. 화랑 관창과 김유신 장군, 원효와 혜초 스님, 선덕여왕과 무열왕, 장보고와 최치원이 그리던 달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신라의 달밤’은 한국 문화의 근간이면서 세계로 나아갈 한류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신라의 달밤’은 화쟁이고 통합이며 개방이고 풍류이다. 창조이고 개혁이며 도전이고 생명이다.   

그래서 경주가 낳은 작가 김동리는 ‘신라의 달밤’을 상징하는 ‘보름달’에서 아름답고 황홀하고 슬프고 유감한 정서를 발견했다. 보름달의 고전적인 완전미와 조화적인 충족감을 찬양한 것이다. ‘신라의 달밤’은 영지못가에서 탑(塔)의 그림자를 찾은 순정의 아사녀를 지켜봤으며, 달빛 아래 밤드리 노니다가 돌아와 아내의 불륜 현장을 보고도 오히려 춤을 추는 처용의 에로티시즘적 역설의 파격미까지 품었다.  

‘신라의 달밤’은 신윤복의 그림 ‘월하정인’(月下情人)과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無影塔)을 탄생한 모태였으며, 너그러운 형태와 어진 선으로 이루어낸 조선백자 달항아리의 무심(無心)과 무욕(無慾)의 경지를 창조한 요람이었다.  

‘꽃이 피면 화산(花山)이요 잎이 피면 청산(靑山)이라...달아 달아 밝은 달아 우주강산에 비친 달아...달 떠온다 달 떠온다 우리 마을에 달 떠온다....’ 

재생력을 가진 달의 형상 구현을 통해 풍요를 기원하고 여성 해방과 외세 항전의 율동으로까지 승화된 강강수월래의 원천도 ‘신라의 달밤’이었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하춘화가 ‘영암 아리랑’에서 옛 백제 고을에 띄운 ‘신라의 달’이 이제 지구촌의 ‘K-달빛(Moonlight)’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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