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꿈속의 사랑’은 번안곡이다. 원곡은 ‘몽중인’(夢中人)이다. 1942년 중국 상해(上海)에서 상영됐던 영화 ‘장미꽃은 곳곳에 피건만’(薔薇處處開)의 삽입곡이었다. 가사의 내용은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영화 속 여주인공 공추하(龔秋霞)가 처음 불렀는데, 중화권에서는 10여 개의 버전이 있다.
그 중에서도 대만(臺灣)의 국민 가수 채금(蔡琴)이 부른 곡이 가장 유명하다. 이 노래에 손석우가 가사를 붙이고 편곡을 한 것을 해방 후 현인이 불러 크게 유행한 것이다. 번안곡이 대개 그렇지만, ‘꿈속의 사랑’도 원곡과는 분위기가 좀 다르다. 여가수가 부른 원곡은 곡조가 사뭇 애절하고 몽환적이다. 그래서 남성 가수인 현인이 부른 ‘꿈속의 사랑’과는 다소 이질감이 없지 않다.
원곡(夢中人)은 연인과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을 자연에 투영하며 감성을 극대화한, 반면 번안곡 ‘꿈속의 사랑’은 사랑 그 자체에 더 몰입하고 있다. ‘실연의 에너지’라는 역설적인 표현이 있다.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록 실연의 고통은 쓰라린 것이겠지만, 꿈결 같은 사랑은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이다. 삶이란 또 그렇게 아파하며 성숙해가는 것이리라.
외국곡에 우리말 가사를 붙이는 노래 번안가요의 시작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성기 음반을 통해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유행가 ‘이 풍진 세상’(희망가)도 번안가였다. 미국의 흑인 영가였던 원곡이 일본을 거쳐 국내에 들어온 것이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도 번안곡이다. 원곡은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다. 번안곡은 1930년대에도 유행했다.
‘황성의 적’(황성옛터)을 불렀던 이애리수와 전설적인 무용수였던 최승희도 서양음악을 번안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메리의 노래’, ‘베니스의 노래’, ‘이태리 정원’ 등이 그런 노래들이다. 막간 가수이자 배우였던 이애리수(李愛利秀)의 예명도 서양 여성의 대명사인 앨리스(Alice)를 본뜬 것이었다. 최승희의 유일한 노래인 ‘이태리의 정원‘은 서정성이 짙은 세레나데로 재즈와 탱고의 혼성음악이었다.
번안곡은 일본에서 히트한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른 경우가 가장 보편적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수인 최규엽도 일본 번안곡을 상당수 불렀다. 반대로 한반도에서 유행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과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 등은 일본에서 번안돼 유행하기도 했다. ‘꿈속의 사랑’은 해방 후 최초의 번안가요이다. 현인은 일본에서 성악을 공부했고 중국에서 음악활동을 했다.
따라서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채 세련된 스타일로 주목을 받았던 현인이 국제 음악의 전령사 역할을 한 것이다. 스페인어 노래 ‘베사메무초’를 국내에 처음 소개해 트로트 일변도의 대중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가수도 현인이었다. 1950년대에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가수 에디뜨 삐아프가 이브 몽땅과 사랑에 빠졌을 때 부른 자작 히트곡 ‘장미빛 인생’ 등을 불러 한국에 샹송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현인은 독특한 바이브레이션과 스타카토 창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해방 전 남인수, 해방 후 현인’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호방한 성격의 서구형 미남으로 ‘신라의 달밤’을 시작으로 ‘비 내리는 고모령’, ‘럭키 서울’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유호-박시춘-현인’ 트리오 시대를 열었던 인물.
해방 후 앨범을 발표해 데뷔한 가수는 현인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제1호 가수’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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