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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9> 전쟁의 상처를 달래다

‘비극의 시대’ 전란 참화 속 피어난 대중가요
북진 국군 사기 진작 위한 ‘전우야 잘 자라’
전쟁의 비극적 감성, 대중적 감흥 일으켜
한양경제 2024-01-11 14:09:38
6·25전쟁은 광복 후 한국 현대사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미증유의 사건이었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좌익과 우익이 서로 총구를 겨누며 치열하게 싸운 이른바 동족상잔이었다.

전 국토가 전쟁터로 변했고 온 국민이 피란민으로 내몰렸다.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선에서 스러져 간 젊은 넋들이 그 얼마이며, 대구와 부산으로 밀려든 피란민들의 삶은 얼마나 가혹했을까.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는 우리 가요 속에도 선연하게 남아있다. 전란의 참화 속에서도 대중가요가 탄생한 것이었다. 비극의 시대가 명곡의 요람이 되는 역설의 미학이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전우야 잘 자라’는 작사가 유호와 작곡가 박시춘이 북진하는 국군의 사기 진작과 정서 함양을 위해 만든 6·25전쟁기 첫 명작이었다. 

군가풍이었지만 공식적인 군가는 아니었고, 일반 대중가요와도 분위기가 달랐던 이 노래를 진중가요(陣中歌謠)라고 했다. 

‘꽃잎처럼 떨어져간…’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등 전쟁의 비극적 감성을 표현한 노랫말이 대중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생사의 경계에 선 군장병 뿐만 아니라, 전쟁의 상처가 깊었던 국민들에게도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영원한 군가로 남은 것이다. 

‘전선야곡’은 ‘유호-박시춘 콤비’의 전쟁가요 두 번째 걸작이다.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전선 병사들의 비장한 내면을 그린 전쟁가요였다. 전쟁가요는 이렇게 대중가요의 주류인 트로트와 결합하면서 노랫말의 서정성과 멜로디의 대중성이 시대의 아픔에 부응하면서 전쟁의 상처를 쓰다듬고 평화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길어올렸다. 영화 ‘고지전’의 테마곡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가랑잎이 휘날리고 이슬이 소리 없이 내리는 전선의 달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의 폭풍전야…. ‘전선야곡’의 비감어린 서정성은 ‘어머니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라는 대목에서 절정을 이룬다. 더구나 가수 신세영이 대구에서 레코드 취입을 할 때 어머니가 운명했다는 소식에 목이 멘 상태로 노래를 불러 더 큰 공감을 얻었다. 그래서 ‘전선야곡’은 군가를 능가하는 ‘불멸의 전쟁가요’로 남았다. 

가수 심연옥이 부른 ‘아내의 노래’와 금사향의 ‘임계신 전선’, 유춘산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 등은 아내가 전장에 나간 남편의 안전과 무운을 빌거나, 전선에서 보낸 남편의 편지를 받아든 아내의 눈물을 그렸다. 전란의 와중에 후방에 남은 아내들의 의연한 모습에서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가 투영되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시대 상황이 요구한 경직성일 것이다.  

가수 이인권이 발표한 ‘미사의 노래’는 대구지역 위문 공연장에 떨어진 포탄에 아내를 잃은 자신의 슬픔을 토로한 것이었다. 이해연이 부른 ‘단장의 미아래 고개’ 또한 전란 속에 딸을 잃은 작사가 반야월의 아픔을 남편이나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애끊는 호곡성으로 승화시킨 노래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는 1·4후퇴 당시 가족과 생이별을 한 부산 피란민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 

남인수가 부른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유호-박시춘 콤비의 전쟁가요 마무리 작품이다.

휴전협정이 이루어지면서 정든 부산을 떠나는 피란민의 정한과 서울로 돌아가는 설레임을 그린 명작이다. 

참혹한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명곡들을 탄생시킨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는 전쟁가요의 산실이자 피란 연예인들의 사랑방이었다. 트로트는 그렇게 ‘대포 소리에도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 역할을 한 것이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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