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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11> ‘흥망과 영욕의 분수령’ 한양(漢陽)을 그리다

판소리 명창이 부른 ‘쑥대머리’ 속 노랫말 ‘한양’
지명 ‘한양’에서 녹아나는 이별과 재회의 감성
대중가요, 전후 복구와 인생 역전을 노래하다
한양경제 2024-02-05 14:03:54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쑥대머리’는 춘향가 중 옥중가의 한 대목이다. 신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옥에 갖힌 춘향이의 참담한 처지와 절망적인 심정을 그렸다. 머리가 쑥처럼 헝클어진 귀신 형상을 한 채 오로지 이도령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넋두리는 일제강점기 조선 민중의 좌절과 희망을 대변한 것이기도 했다. 

전설적인 판소리 명창 임방울이 빼어나게 잘 불러 ‘쑥대머리 신화’를 이루어낸 곡으로도 유명하다. 이 판소리 ‘쑥대머리’의 대중가요식 변주가 바로 1950년대 중반에 나온 ‘남원의 애수’와 ‘엽전 열닷냥’이다. 판소리 사설은 물론 가요의 가사에서도 같이 등장하는 지명이 다름 아닌 ‘한양’(漢陽)이다. 

‘한양천리 떠나간들 너를 어이 잊을소냐, 성황당 고개마루 나귀마저 울고넘네, 춘향아 울지마라 달래였건만…’ 

한양이라는 지명은 신라 진흥왕이 고구려·백제와의 쟁패에서 한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한산주(漢山州)라고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는 이곳을 가로지르는 한강(漢江)의 이름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강을 한수(漢水)라고 하여 처음 ‘漢’자를 붙인 것은 백제였다고 한다. 이것이 신라 삼국통일 후 경덕왕이 이곳을 한양군(漢陽郡)으로 개명한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중심으로 부상했던 한양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도읍지를 옮기면서 21세기인 현재까지 400여년 세월 수도 서울이 되었다. ‘漢’은 크다는 의미이고 ‘陽’은 큰집이나 마을이 들어설 양지바른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양은 그렇게 모든 부귀영화가 서려있는 꿈과 희망의 도시이자, 그곳으로 떠난 님을 그리는 이별과 슬픔의 상징이기도 했다. 가요에 한양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연예계의 팔방미인이었던 김용만의 데뷔곡 ‘남원의 애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한글 고전 소설 ‘춘향전’에서 전라도 남원 사또의 자제 ‘이몽룡’과 기생 월매의 딸 ‘춘향’ 사이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과 이별 그리고 만남을 그려낸 곡이다. ‘남원의 애수’는 시쳇말로 소설 ‘춘향전’의 서정을 패러디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설과 가사 속의 한양은 그래서 이별의 정한과 재회의 기쁨을 노래하는 모티브이다.

‘남원의 애수’는 서울 출생인 김용만이 악기점을 하던 친구네 집에서 우연히 ‘개나리 처녀’의 작곡가 김화영을 만나 6·25전쟁 휴전 직후인 1953년 발표한 데뷔곡이었다. ‘남원의 애수’를 모르면 트로트를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사람들은 '남원의 애수'를 따라 부르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대중가요의 힘이다. 

‘대장군 잘 있거라, 다시 오마 고향산천, 과거 보러 한양 천리 떠나가는 나그네에, 내 낭군 알성급제 천번만번 빌고 빌며…’ 

가수이자 작곡가인 한복남이 발표한 ‘엽전 열닷냥’에도 한양이 등장한다.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소재로 한 이 노래는 입신양명과 금의환향을 바라는 선비의 꿈과 낭군의 알성급제를 소망하며 노잣돈 열닷냥을 건네는 여인의 낭만적 사랑을 그렸다.  

1950년대 중반에 나온 ‘남원의 애수’와 ‘엽전 열닷냥’은 어린 시절 유교적 분위기의 집안에서 성장한 50, 60대 이상의 세대에게 더 가슴에 와닿는 노래이다. 전란의 폐허 속에서도 흥겨운 가락에 정겨운 풍경을 담고 전후 복구와 인생 역전의 희망을 전한 것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했다. 굴곡진 역사 속 민중의 희노애락 한가운데에는 흥망과 영욕의 상징인 한양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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