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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4> 잎들의 조용한 대역사

잎들이 커나가며 지상을 녹화하니
봄마다 어김없이 기적이 일어나네
사지(死地)를 생명의 땅으로 바꾸는 대역사
한양경제 2024-04-22 10:58:33
지난 14일 싱그러운 연초록 잎들로 녹화 되어가는 서울 강남구 구룡산 자락 전경 /이효성 

4월에는 온 세상이 “어린 천사들의 손가락”(이수익, 〈어린 나뭇잎에게〉 중에서)인 어린 새잎들로 덮여간다. 봄이 되면 풀과 나무의 세계에 어김없이 벌어지는 두 가지 일이 있다. 꽃 피는 일과 잎 나는 일이다. 땅에서는 풀의 싹이나 꽃봉오리가 머리를 내밀고, 나무 가지에서 잎이나 꽃의 봉오리가 피어난다. 종에 따라 잎이 먼저 나기도, 하고 꽃이 먼저 피기도 하고, 잎과 꽃이 동시에 피기도 한다. 그러나 예외 없이 모든 꽃은 피었다가 져버리고 모든 풀과 나무들은 결국 잎으로 덮이게 된다.

꽃은 대체로 화려하고 아름답고 향기롭기는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한다. 꽃은 종족을 이어갈 씨를 얻으려는 수단이기에 꽃가루받이를 위해서 곤충을 유인해야 한다. 그래서 색깔이 화려하여 아름답고, 꿀을 품고 있어 향기롭지만, 일단 수정이 끝나면 꽃의 임무는 끝나고 이내 져버린다. 이것은 꽃의 숙명이다. 그래서 “꽃은 열흘을 붉지 못한다(花無十日紅)”는 말이 있다. 이제 씨를 품은 열매를 키우는 일이 남아 있는데 이 일은 잎과 뿌리에 맡겨진다. 그래서 잎과 뿌리는 씨와 열매가 자라고 익을 때까지 영양을 공급해야 하기에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식물의 생존에 잎의 존재는 특히 더 중요하다. 그래서 잎은 예쁘지는 않지만 강인하고 수명이 길다. 잎은 꽃처럼 곤충을 유혹할 필요가 없어 화려하지도 않다. 잎은 꽃처럼 씨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씨를 키우는 일을 포함하여 자신이 그 일부인 풀 또는 나무에 양분을 공급하는 일이 과업이다. 그래서 잎은 봄에 한 번 나면 초가을까지 계속 자라고 늦가을 시들어 마르거나 떨어져 없어질 때까지 쭉 건재해야 한다. 열매와 씨를 키우고 본체를 유지하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잎은 갈수록 무성해지고 오랫동안 작업을 할 수 있게 건강해야 한다.

풀잎은 냉이, 쑥, 민들레, 꽃다지, 광대나물 등과 같이 ‘로제트(rosette) 현상’으로 땅바닥에 붙은 채로 겨울을 난 것도 있지만, 대체로 이른 것은 2월 하순부터, 대부분은 3월 하순부터, 자라기 시작하여, 사월이 되어 어느 정도 자라고 그 수가 많아지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뭇잎은 대부분 나무에서 3월 하순부터 나기 시작하여 늦게 나는 종류의 경우에도 4월 하순까지는 거의 다 난다. 이처럼 봄에는 특히 4월에 풀잎이 땅을 덮어가고 나뭇잎이 나무를 메워가기 시작하면 지상은 부지불식간에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뀐다. 이렇게 봄에는 지상에서 아주 큰 변화가 잎들에 의해 조용하나 꾸준히 일어는 것이다.

이때부터 세상은 잎들의 덕택으로 유지되고 윤택해진다. 잎들은 햇빛을 흡수하고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뿌리가 공급해준 물로 탄수화물을 합성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이른바 광합성을 수행한다. 잎들에 의한 광합성은 지구 온난화의 주범의 하나인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신 동물들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대량으로 방출함으로써 지구의 환경 정화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게다가 잎에 의한 광합성의 산물인 탄수화물은 식물 자신과 초식 동물의 생존과 성장에 필요한 자양분이다. 잎은 먹이사슬의 기초로 먹이의 생산 기지인 것이다.

자연에는 경이로운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특히 봄의 자연에는 세상이 풀잎과 나뭇잎으·로 뒤덮여 메마른 죽음의 땅이 생기 있는 생명의 땅으로 바뀌는 가장 경이로운 일이 일어난다. 

“초록빛 함빡 머금은 바람이 훑고 지나/잿빛에 쌓인 대지는 허물을 벗고/파릇파릇한 물빛이 봇물 터져/산야는 쪽빛으로 차고 넘치누나”(주응규, 〈어느 사월의 단편〉 중에서) 

그 일 즉 잎들에 의한 지상의 녹화 작업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최대 규모의 대역사(大役事)일 것이다. 수많은 나무들에 일시에 꽃들이 화사하게 피는 일도 경이이긴 하지만,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수행되는 이 잎의 대역사에는 규모, 지속성, 영향 등 모든 면에서 미치지 못한다. 이 대역사는 오로지 잎들만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신록의 잎들만이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해서 지상의 경관을 송두리째 녹색으로 뒤바꾸고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잎들의 대역사는 죽음과 절망을 삶과 희망으로 바꾸고, 식물과 그 열매를 키우는 양분을 만들어 내어 먹이사슬을 유지하고, 지상의 환경을 정화하여 동물들도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 대역사의 덕택으로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생존할 수 있는 풍요로운 세상이 유지된다. 우리는 봄마다 기적 같은 이러한 잎들의 대역사를 보곤 한다. 우리는 이 고마운 대역사가 해마다 되풀이될 수 있도록 자연과 환경을 잘 보존해야 한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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