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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30> 청순하고 싱그러운 신록의 세상

날씨는 온화하고 햇볕은 따뜻하여
새잎들 부쩍 자라 신록이 우거지니
청순한 연초록 세상 싱그러움 가득타
한양경제 2025-05-15 17:04:04
5월은 신록이라는 기적이 펼쳐지는 시절이다. 이효성

5월은 청순하고 싱그러운 신록으로 대표되는 계절이다. 

신록은 늦봄이나 초여름에 새로 나온 잎의 연초록빛을 말한다. 나무의 새로운 잎은 산사나무, 야광나무, 자귀나무, 수수꽃다리, 철쭉, 쥐똥나무처럼 이른 것은 3월 하순부터 난다. 4월 초순에 잎보다 먼저 꽃이 핀 나무들은 꽃이 핀 후부터 잎이 나기 시작한다. 이팝나무, 오동나무, 아까시나무, 회화나무, 팽나무처럼 잎이 늦은 것도 대체로 4월 하순까지는 나기 시작한다.  

새 잎들이 잎눈에서 막 나올 때는 황금빛이나 연둣빛이다가 자라면서 연녹색을 띄게 된다. 4월에 작은 잎들이 나고 자라면서 4월 하순 경부터는 어느 정도 연초록 신록이 형성되어 5월에서 6월 초까지 잎들이 더욱 자라 본격적인 연초록 신록이 펼쳐지다가 그 이후는 긴 낮 동안의 강렬한 햇볕의 작용으로 잎들은 어느덧 진초록 빛깔로 바뀐다. 

나무에서 잎들이 처음 나올 때는 너무 작아서 멀리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잎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나무 전체에 새잎들이 거의 다 나 있어도 역시 나무가 연초록 잎들로 덮이지는 않는다. 잎들이 좀 더 자라서 제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햇볕에 연둣빛이 연초록빛으로 바뀌어야 나무들이 연초록 옷으로 차려입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때가 바로 4월 하순부터 5월까지다. 수필가 이양하가 ‘신록 예찬’에서 “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淡綠: 연한 녹색)을 띠는 시절”이라고 말한 바로 그때다. 

신록이 가장 풋풋하고 싱그럽고 청순하여 가장 아름다운 때는 5월이다. 
우선 이때의 연초록 잎들은 다 자라지 않아 잎 자체가 아직은 작고 부드럽다. 그리고 연초록빛이라서 깨끗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도 이때는 잎들이 상하거나 병충해도 입지 않은 채 원래의 모습이 거의 훼손되지 않은 때다. 게다가 이때는 잎들이 나무를 빽빽이 덮은 상태가 아니라 여유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의 눈에 이 새로운 신록에 아직 익숙하지 않아 더욱 참신해 보인다. 한 시인은 이때의 신록을 “투명과 해맑음으로/때 묻지 않은 순수/바람도 손 못 댈 초록빛”[박인걸, 〈5월 신록〉 중에서]으로 묘사했다. 이처럼 5월의 나뭇잎들은 잎의 일생에서 가장 청순하고 신선하고 아름다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겨울 3개월은 춥고, 3월과 4월은 봄이지만 꽃샘추위와 봄바람으로 어수선한 계절이다. 즉 겨울부터 5개월 동안 일기불순이 연속되는 나날이다. 그러다 5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바람도 잦아들어 날씨가 안정되고, 대기에서 한기도 완전히 가시고, 햇볕이 적당해 따뜻하고 밝은 날들이 이어진다. 

여기에 하늘은 파랗고, 지상은 연초록으로 물들고, 대기는 각종 화사한 꽃들과 방초에서 실려 오는 향기로 그득하다. 실로 연중 가장 화창하고 향기롭고 싱그럽고 푸른빛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이다. 이때의 모습을 한 시인은 “눈이 시린 파란 하늘/하늘 이고 선 우뚝한 산/푸르름 잔득 쌓아놓은/싱그러운 초록의 숲/환하게 웃고 있는 맑은 햇살”[이영균, 〈신록〉 중에서]이라고 표현했다. 

5월의 푸름은 너무도 강렬하고 매혹적인 생명력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그 푸름이 얼마나 매혹적이었으면 우리의 한 시인은 자신도 그런 푸름이 되고자 한다고 말한다. “초록의 나무처럼 나의 가슴도 싱싱한/푸르름으로 물 올리게 하소서.”[목정희, 〈5월의 기도〉 중에서]. 다른 한 시인은 5월의 눈부신 초록과 짙은 향기로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오세영, 〈5월〉 중에서].  

심지어 한 시인은 오월이 오면 한 그루 푸른 나무로 살자고 말한다. “오월이 돌아오면/혈맥은 그대로 푸른 엽맥이 되어라//심장에는 흥건한 엽록소를 지니고/하늘을 우러러 한 그루 푸른 나무로 하고 살자”[신석정, 〈오월이 돌아오면〉 중에서]. 

그러니 “온 세상이/신록으로 물든/오월의 동산”[전선희, 〈신록의 오월을 보며〉 중에서]은 신이 내린 연중 최고의 정경이다. 이때 우리의 산야는 “들판을 가로지르고/언덕을 훌쩍 뛰어넘고/산에 산을 타고 오르는/넘실거리는 초록 물결”[남정림, 〈5월의 아침〉 중에서]의 천지가 된다. 5월에는 어디서나 청순하고 싱그러운 신록으로 뒤덮인 가슴 벅찬 정경을 볼 수 있다.  

5월은 자연의 섭리가 펼치는 신록이라는 최대 규모의 놀라운 기적을 우리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감격하고 설레고 신명나는 계절이다. 그러한 신록에 가슴이 뛰고 흥에 겨워하는 것은 자연스런 반응이다. 그래서 신록은 이영도 시인의 표현대로 “우쭐대고”, 김지하 시인의 지적대로 “우렁차다.” 신록에 흥겨운 마음에 신록은 우쭐대고, 신록에 벅찬 마음에 신록은 우렁찬 것이다. 

5월은 신록이라는 기적이 펼쳐지는 시절이다. 
5월은 신록으로 빛나고, 신록으로 충만한 계절이다. 5월은 청순하고 싱그러운 신록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러한 5월 신록의 싱그러움 속에서 누군들 새로워지지 않으랴! 그 신선함 속에서 누군들 설레지 않으랴! 그 청순함 속에서 누군들 순수해지지 않으랴! 그 풋풋한 생명력 속에서 누군들 활기차지 않으랴! 그 흥겨운 향연 속에서 누군들 신명나지 않으랴! 오 그대여, 이 5월의 청순하고 싱그러운 신록을 마음껏 음미하고 노래하고 즐겨라! 그것이 이 신록의 계절에 어울리는 일이다. 이 5월의 신록은 온통 우리 살아 있는 생명들의 것이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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