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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17> 불교적 정서

신라 향가에서 시작된 불교 정서 스민 노래들
흥망의 무상함 노래한 ‘꿈꾸는 백마강’·‘황성옛터’
불교 정신 ‘空’, 대중가요 변주로 녹아들어
한양경제 2024-05-14 09:00:06
우리 음악 역사에서 불교 관련 노래의 기원은 신라 향가(鄕歌)일 것이다. 향가의 불교적 정서는 고려속요를 거쳐 조선시대의 시조와 가사 그리고 민요와 판소리로 면면히 계승되었다. 

20세기에 이르러 불교적인 노래는 주로 대중적 전파력이 강한 가요시 장르를 통해 나타났다. 1930년대 후반부터 출현한 숱한 트로트 가요에서 망국의 정한과 민중의 애환을 불교적으로 승화시키려 한 것이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백제의 멸망을 서사적으로 읊은 노래 ‘꿈꾸는 백마강’은 작사가 조명암의 불교적 인연이 흠뻑 배어있다. 삭발 수행의 이력을 지닌 조명암이 고향에서 멀지 않은 백마강과 낙화암, 고란사의 달빛과 종소리를 투영하며 잃어버린 조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 백제 흥망의 무상함을 불교적으로 변용한 것이다. 

1천400여 년 전에 나당 연합군에 백제는 패망했지만, 백마강의 물결과 낙화암의 음영은 여전하다는 것은 허망한 역사에 대한 음유이기도 하다. 나라 잃은 서러움을 대변한 ‘꿈꾸는 백마강’은 조선총독부가 발매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가수 이인권의 출세곡이다. 일제 말기에 군국가요를 부르기도 했고, 광복 후 ‘귀국선’을 히트시켰지만, 6·25전쟁의 포탄에 아내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황성옛터’는 백제의 옛 자취를 되돌아본 ‘꿈꾸는 백마강’보다 몇 년 앞서 1930년대를 풍미한 공전의 히트곡이다. 이 노래 역시 폐허로 전락한 고려의 왕궁터를 조명하고 있는 망국의 탄식이다. 가뭇없이 사라진 옛 영화의 허망함을 상징하듯 시린 달빛에 젖은 황성(荒城)은 흥망성쇠의 무상함 그 자체이다.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임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가수 송춘희의 출세곡이자 평생 간판곡이었던 ‘수덕사의 여승’은 1960년대의 대미를 장식한 불교 테마 트로트곡이다. 이 노래는 일제강점기에 시인이자 수필가로 활동했던 김일엽 스님의 가슴 먹먹한 생애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여운이 감도는 작품이다. 

‘가는 세월 바람 타고 흘러가는 저 구름아/ 수많은 사연 담아 가는 곳이 어드메냐/ ./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 양 간 곳 없고,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한낱 기생 출신으로 후궁의 지위에 올라 한 시절 정권을 농단했던 장녹수(張綠水). 그러나 폭군 연산군의 몰락과 함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파란만장한 삶. 전미경이 부른 1995년 드라마 주제가 ‘장녹수’는 노랫말 또한 다분히 불교적이다. 

‘동녘 저 편에 먼동이 트면, 철새처럼 떠나리라, 세상 어딘가 마음줄 곳을, 집시되어 찾으리라, 생은 무엇인가요, 삶은 무엇인가요….’ 

같은 시기에 박정식이 발표한 ‘천년바위’는 노래 제목처럼 변함없이 대중의 심금을 울리는 불교적 정서의 명곡이다. 가사가 불교의 화두(話頭)나 게송(偈頌)과 다름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산사음악회의 단골 초청곡으로 각광을 받았다. 

유랑하는 민중의 애환, 실향과 실연의 아픔, 승화된 이별의 정서, 덧없는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 등 불교적인 내용을 담은 노래는 그 깊이와 울림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불교를 가장 간결하게 응축한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중심 사상인 공(空)의 대중가요적 변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삶이란 한 점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점 구름이 사라짐’(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이라 했던가.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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