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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21> 고개의 정한(情恨)

한반도 굽이굽이 고개마다 배인 눈물의 한
눈물의 문경새재·울음의 박달재·이별의 고모령
흥망성쇠 민족사가 녹아든 고개의 노래
한양경제 2024-06-22 15:37:09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경북 문경에서 멀리 떨어진 전남 진도에서 발생한 민요 ‘진도 아리랑’에 왜 ‘문경새재’가 등장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의견과 주장이 분분하지만 ‘문경새재’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고개(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우리 겨레의 고개에는 이렇게 눈물이 배어있었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대포 한 잔에 구성지게 부르던 국민 애창곡 ‘울고 넘는 박달재’(1948년)는 해방 후에 등장한 고개의 아리랑이었다. 작사가 반야월이 악극단 일행과 충청도의 박달재를 넘다가 이름 모를 남녀의 애틋한 이별 장면을 보고 지은 노래이다. 

충주에서 제천으로 넘어가는 박달재는 실제로는 해발 453m의 고개에 불과했지만 노래가 지닌 대중적 감성으로 인해 국민적인 고개가 되었다. 역사의 격랑과 삶의 곡절에 휩쓸린 한국인이 넘고 또 넘어야 했던 이별의 고개이자 인생고개였기 때문이었다. 시대적으로는 해방정국의 극심한 혼란에다 분단이 초래한 실향과 이산의 통점을 넘어서야 했던 아리랑 고개의 상징이었다.

‘어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 넘어오던 그날 밤이 그리웁고나’ 

동시대의 트로트곡인 ‘비 내리는 고모령’ 또한 ‘비’가 내린다기보다는 ‘눈물’이 흐르는 고갯길이다. 눈물을 비로 은유한 것이다. 고모령 역시 이별과 눈물의 정한을 담고 있다. 노래의 배경은 현재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고모령(顧母嶺)이다. 

‘령(嶺)’으로 부르기조차 민망한 이 작은 고갯길이 격동의 세월 우리 한국인이 허위허위 넘어온 정신적인 고개의 상징으로 전국적인 유명 고개가 된 것 또한 가요의 대중성 덕분이었다. ‘비 내리는 고모령’ 역시 국민가요가 되었다. 특히 중장년 남성들이 한 잔 술에 목메어 읊는 사모(思母)와 망향(望鄕)의 노래이다.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는 한 고모령의 서정은 언제든 소환될 것이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6년)는 제목에서부터 애끊는 슬픔이 묻어있다. 동족상잔이 낳은 참상의 여파 때문이다. 미아리 고개에는 전란의 와중에 자식을 잃어버린 작사가 반야월의 선연한 비감이 어려있다. 가족사의 통한을 민족사의 정한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전쟁의 참화 속에 탄생한 겨레의 비극적 서정가요였다. 

가수 남상규의 데뷔곡 ‘추풍령 고개’(1965년)도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 ‘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 눈물 어린 고개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던 산업화 시절의 인생고개였다. 아리랑을 비롯한 민요와 대중가요 속의 트로트에는 이렇게 고개가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고개마다 눈물이 그렁거린다. 우리 민족에게 고개는 만남보다는 먼저 이별의 고개였기 때문이다. 

유달리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고개’는 사람과 물자와 문화가 넘나드는 숙명적 통로였다. 그것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교통로이면서 지역간 상업적 통로이자 국가간 군사적 관문이기도 했다. 숱한 세월 이별의 슬픔과 만남의 기쁨이 교차하는 한과 흥의 분수령이었다. 흥망성쇠의 민족사이자 희로애락의 인생행로이기도 했다. 그래서 굽이굽이 열두고개마다 켜켜이 정한이 배어있는 것이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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