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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11> 8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팔월은 늦은 여름, 이어지는 찜통더위
일교차 커지면서 열대야 차차 사라지고
섬돌 밑 귀뚜라미는 가을 온다고 하네
한양경제 2024-08-04 10:53:43
지난 2일 서울 개포동에서 매미들이 벗나무 껍질에 붙어 수액을 빨거나 울고 있다. 이효성

8월은 그레고리력에서 늦여름으로 치는 달이다. 8월 초는 하지로부터 약 40여 일이 지난 시점으로 낮이 밤보다 여전히 길기는 하지만 그 길이는 상대적으로 상당히 짧아진 때다. 따라서 복사열 또한 상당히 줄어들어 있다. 8월 초순은, 7월 하순의 찜통더위가 그대로 이어지기에, 7월 하순부터 이어지는 최고의 휴가철이기도 하다. 

그러나 8월 중순에 이르면 낮에는 여전히 폭염이 계속되지만 일교차가 커지면서 열대야가 사라지고 아침저녁에는 기온이 좀 떨어지며 서늘한 느낌이 난다. 그래서 휴가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기에 8월 중순은 휴가지의 혼잡을 피하려는 사람들의 늦은 휴가철이 된다. 8월 하순에 이르면 낮에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하더라도 대기가 상당히 건조해져 비지땀은 나지 않고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8월은 초순의 불볕더위가 끝나면서 늦더위 속에서도 시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이행하는 시기다. 여름 동안 쌓여온 복사열의 양이 많아서 아직은 더위가 지속되지만 그러나 낮 동안의 일조량 그 자체는 상당히 줄어들어 더 이상 대기가 데워지지 않고 거꾸로 식기 시작한다. 바꾸어 말하면, 8월은 더위가 계속되는 때이기는 하지만 더위가 한풀 꺾여 수그러들기 시작하면서 차츰 가을 기운이 스미는 때인 것이다. 

8월 중순경부터는 낮에도 건조하여 기분 좋은 고슬고슬한 바람이 언뜻언뜻 인다. 하순부터는 낮아진 태양의 고도 탓으로 웬지 쓸쓸한 기분이 느껴지며 가을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래서 태양의 운행에 기초한 24절기에는 8월 초순 어간에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 절기가 있고, 하순 어간에는 더위가 끝난다는 ‘처서(處暑)’ 절기가 있다.

그리하여 8월에는 가을로 이행해 가는 징조들이 나타난다. 그 징조들 가운데 하나는 여름이 끝나가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고지하는 것들이다. 여름이 끝나감을 알리는 대표적인 존재는 가슴 부위에 진동막과 울림통을 가지고 있어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매미다. 

장마가 끝나는 7월 하순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하는 매미는 8월의 늦더위 속에서는 거의 필사적으로 운다. 아마 조만간 더위가 끝날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매미는 가을이 오면 거의 일제히 사라진다는 점에서 가을의 내도를 알리는 고지(告知)자가 아니라 여름의 종언을 선언하는 종결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가만히 있어도 몸에 배는 진땀과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 느닷없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천둥번개,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모기나 파리의 성화 등도 여름이 끝나면서 사라져간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존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귀뚜라미와 베짱이를 비롯한 풀벌레들이다. 풀벌레들은 여치처럼 초여름부터 나타나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늦여름에 등장한다. “알기(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는 7월(양력 8월) 귀뚜라미”라는 속담처럼, 귀뚜라미는 8월 초순 무렵부터 나타나서 울기 시작하여 10월 중순까지 운다. 그러니 풀벌레들은, 특히 귀뚜라미는 진정한 가을의 전령사라 할 수 있다. 풀벌레 가운데에서도 귀뚜라미만은 풀밭에서보다는 사람들에게 가까운 부엌이나 섬돌 밑이나 마루 밑 등에서 많이 우는 데다 그 처량한 울음소리로 인하여 가을의 애수를 돋우기에 많은 시와 글에 등장한다. 

그밖에 건조를 위해 마당에 널리는 빨간 고추들, 혼인색을 띈 채 막대기 끝에 앉아 있는 빨간 고추잠자리, 아침저녁으로 가슴에 스미는 서늘한 바람, 한낮에 언뜻 부는 고슬고슬한 바람도 가을의 내도를 알리는 전령사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8월 하순에 시원한 가을이 오는 것은 아니다.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속담이 말하듯, 이 무렵 늦더위가 만만치 않다. 아침저녁의 산들바람에 무더위가 끝났다는 생각이 잘못임을 일깨우려는 듯 낮에는 늦더위가 발호하기도 한다. 마치 꽃샘추위가 봄의 내도를 방해하듯, 늦더위는 가을의 내도를 훼방한다. 하지만 꽃샘추위가 그렇듯, 늦더위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처서는 하지로부터 60일이 넘는 시점으로 태양의 복사열이 상당히 줄고 일교차가 심해져 밤에 잘 때는 처네나 얇은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의 날씨 변화가 이미 일어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8월은 곡물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절이다. 수분과 더위를 좋아하는 벼는 8월 중순 무렵에 이삭이 될 꽃줄기를 배어 볏대가 불룩해진다. 이처럼 벼가 알을 배어 불룩해지는 시기를 배동바지라고 부른다. 배동바지는 곧 이삭이 나오는 출수기(出穗期)로 이어지는데 이 무렵이 8월 하순 어간이다. 

출수기에는 벼꽃의 꽃가루받이를 위해 비는 금물이다. 비가 와서 꽃가루받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벼에 쭉정이가 많아진다. 여러 겹의 껍질에 쌓여 붉은 수염을 내밀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옥수수는 대체로 늦여름에 수확한다. 옥수수는 세계적으로 쌀과 밀 다음으로 중요한 곡물이기도 하다. 쪄먹을 옥수수는 씨알이 완전히 익기 전인 7월 하순경부터, 곡식이나 사료용으로 쓸 것은 씨알이 완전히 익은 8월 하순경부터 수확한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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