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1977년 이미자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며 온 국민과 수많은 재일동포의 심금을 울렸던 ‘모정’은 실제 사연을 토대로 만든 곡이다.
광복 후 혼란상과 전쟁의 후유증으로 피폐하던 시절, 열세 살 어린 아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머나먼 타국땅에서 온갖 차별과 고난을 참아가며 가냘픈 손으로 번 돈과 함께 보내온 아들의 소식에 어머니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들의 소식은 끊어졌고, 오늘도 내일도 아들을 기다리며 눈물과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던 어머니의 머리는 백발이 되었다.
‘모정’은 고국을 찾았던 재일동포 이강희씨가 남긴 사연을 다듬어서 이채주가 가사로 만들고 박춘석이 곡을 붙인 것이다. 1절은 아들을 기다리는 애타는 모정을, 2절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고향을 찾은 아들의 회한을 그렸다. ‘모정’은 1970년대 중후반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모국 방문에 부응하여 발표했다. 1, 2절 행간에 등장하는 내레이션이 노래의 감성을 더욱 증폭시킨다.
‘철없는 너를 이국땅 낯선 곳에 피눈물로 보내 놓고, 만고 고생 다 시킨 못난 어밀 용서해라, 어린 네가 뼈 아프게 번 돈 푼푼이 모아, 이 어미 쓰라고 보내 주면서 눈물에 얼룩진 편지에다 어머니 오래 오래 사시라고 간곡히도 이르더니, 강물같은 세월은 흘러만 가는데, 보고 싶은 내 자식은 어이되어 오지를 않나, 어제도 오늘도 너 기다리다 병든 몸, 지팡이에 온 힘을 다해 언덕 위에 올라가, 아랫마을 정거장에 내리는 그림자를 지켜보고 섰는데, 너는 왜 돌아오지 않느냐 강희야 강희야…’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보냈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머니’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한 존재이다. 특히 곡절 많은 현대사에서 숱한 가족의 해체를 경험했던 한국 사회에서 어머니는 더욱 간절하고 애절한 단어였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와 모정(母情)을 빼고 대중가요사를 논할 수가 없고, 그 노래에 목이 메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복 후 1960~1970년까지만 해도 대중가요 노랫말 속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멀리 고향에서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밤낮없이 일만 하다가 돌아가신 애달픈 사연의 주인공들이었다.
1972년 TBC 연속극 ‘어머니’의 주제가였던 ‘모정의 세월’도 그런 노래다. ‘모정의 세월’은 당대의 스타였던 나훈아가 불러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노래를 신인 가수 한세일이 그 다음 해에 리메이크해 크게 히트했다. 가요도 시절 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동지섣달 긴긴밤이 짧기만 한 것은/ 근심으로 지새우는 어머님 마음/ 흰머리 잔주름은 늘어만 가시는데/ 한없이 이어지는 모정의 세월/ 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이 일듯/ 어머니 가슴에는 물결만 높네’
험난한 여정 끝에 알을 낳고, 갓 부화한 새끼들의 영양 공급을 위해 몸까지 내어주는 연어의 어미처럼 모정(母情)은 위대한 서사시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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