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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부동산 신탁사만 믿었는데…” 수익 한푼 없이 ‘국세 폭탄’ 맞는 토지주들

‘부가가치세 환급금 청구권’ 신탁사 양도 후 사재 털어 납세
위탁자 측 “신탁사가 계약서 약관에 끼워 떠넘기기”
사업 실패 시 ‘국세 환수’ 지연에 ‘추가 피해 양산’ 우려
이승욱 기자 2024-10-02 17:28:35
서울 강남구 한국자산신탁 사옥 전경. 한양경제

부동산 신탁사가 위탁자(토지주)로부터 국세인 부가가치세(이하 부가세) 환급금을 사실상 양도받은 뒤 이를 해당 신탁사업 경비로 사용했다는 이유를 들어 부가세 납부 책임을 위탁자에만 미뤄 ‘국세 환수’ 지연과 함께 ‘세금 폭탄’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위탁자들은 “불공정한 신탁계약에 따라 부가세 환급금 청구권을 신탁사에 양도한 상황에서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신탁사가 위험성 고지도 없이 부가세 환급금을 써놓고 위탁자 개인재산으로 부가세 납부를 부담하게끔 떠넘기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2일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2013년 3월 대구 수성구에서 부동산 신탁사업자(수탁자) 한국자산신탁(이하 한자신)과 오피스텔·근린생활시설 신축 신탁계약을 한 위탁자 측은 2016년 4~5월 관할 세무서로부터 ‘부가세 합계 5억3천만원을 납부하라’는 독촉을 받았고, 이후 압류 예고 통지까지 받았다.

당시 세무당국은 위탁자이자 토지주인 장모씨 등이 ‘한자신과 신탁사업을 하며 지난 3년간 부가세 환급금을 받아갔으니 발생한 부가세를 납부해야 한다고 했다.

부가가치세는 생산 및 유통의 각 단계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에 대해 부과하는 국세다. 세무당국은 사업 초기 재료비 등으로 지출되는 ‘매입세액’이 벌어들이는 ‘매출세액’보다 더 많은 경우 미리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준다.

하지만 위탁자들은 한자신과 신탁계약을 체결하는 동시에 부가세 환급금 청구권을 한자신에 양도했고, 부가세 환급금을 한자신에 ‘위탁’한 만큼 당연히 신탁사가 부가세를 납부할 것이라고 인지했다고 한다.

특히 위탁자 측은 신탁계약에 따라 자신의 토지를 제공하고 사업을 진행했지만 한자신으로부터는 수익금 일체를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위탁자 측 입장에서는 부가세 환급금 청구권을 신탁사에 양도해줬는데, 난데없이 수억원대 부가세를 떠안은 꼴이 된 셈이다.

결국 위탁자 측은 개인재산까지 압류하려는 세무서 독촉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급전을 빌려 부가세 약 5억3천만원을 납부했고, 신탁사업 실패에다 국세 납세로 인한 추가적인 재정적 어려움을 겪어오고 있다.

위탁자 측은 “한자신과 신탁사업 계약을 체결하며 부가세 환급금 청구권까지 양도해 달라고 해서 양도해 준 것은 부가세 납부 문제는 당연히 수탁자(신탁사) 쪽에서 해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며 “계약서 어디에도 부가세 환급금은 신탁사가 받고 추후 부가세 납부는 위탁자가 개인재산으로 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한 고지나 설명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신탁사가 실질적으로 모든 신탁재산과 자금을 관리하는 상황에서 치밀하게 부가세 환급금 양도요구서까지 갖춰 세무서에 제출하게 했는데, 위탁자 개인재산으로 부가세 납부 부담까지 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며 “한자신이 환급받은 부가세는 사업경비로 다 사용했다고 하면서 부가세 납부는 위탁자 책임이라고 떠넘겨 국민 모두가 부담하는 성실납세 의무까지 훼손하는 ‘신탁’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부가세 환급금 청구권의 양도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단순히 특정 신탁사업 현장의 문제로 국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신탁계약상 각종 세무 문제에 대해 위탁자 측에 책임을 전가하는 불공정 약관 조항들이 한자신의 전국 신탁사업 현장 계약서에 ‘특약’ 사항에 숨겨져 동일한 ‘약관’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위탁자 측의 주장이다.

본지가 입수한 대구 수성 사업 현장뿐만 아니라 충북 보은, 제주 연동 신탁사업 현장 등에서 체결된 한자신의 ‘차입형(분양형) 토지신탁계약서’ 약관 및 특약에는 ‘일체의 세무는 갑(위탁자, 토지주)이 부담한다’, ‘부가세 환급금은 신탁재산으로 편입한다’, ‘신탁과정에서 발생되는 제세공과금은 (신탁사인) 을(수탁자)의 명의로 부과되는 것이라도 갑(위탁자)의 부담으로 하되 신탁재산에서 우선적으로 집행하기로 한다’ 등의 조항이 명시돼 있다.

■한자신 “부가세 납부는 위탁자 의무…환급금 양도는 안전장치” 반박

한자신 측은 이에 대해 위탁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부가세 환급금 청구권 등을 양도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자신 관계자는 “부동산 신탁사업은 부가세 환급금 등을 신탁재산 안에 편입해 운영한 다음 나중에 위탁자는 최종적으로 남은 수익금을 가져가는 구조”라면서 “만약 환급금을 그냥 위탁자가 받아가면 개인 자금으로 유용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국세 환급금 양도요구서를 받아 (관할 세무서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위탁자가 부가세 환급금을 유용할 수 있는 만큼 신탁사가 환급금을 양도받은 것은 사전에 안전장치를 해두는 것”이라며 “부가세 환급금을 받더라도 신탁사의 고유재산으로 받는 것이 아니다. (신탁사 계정이 아닌) 신탁현장의 신탁사업 계좌를 통해 신탁재산으로 환급받는 것”이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부가세 환급금은 통상적으로 신탁재산 계정을 통해 받고 신탁사업 사업비나 경비로 사용할 수 있다”면서 “(논란이 된 사업장처럼) 사업이 잘못돼 수익이 남지 않았을 때 부가세 환급받은 것을 문제 삼는다면, 반대로 사업이 잘 돼 수익이 남으면 그 수익을 다 가져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신탁사업의 부가세 환급금 양도 문제를 제기하는 측에서는 부동산 신탁사업의 특수성을 강조한다. 수탁자인 신탁사가 사실상 사업 주도권을 갖고 자금 일체를 집행하고 관리하는 특성상, 신탁사가 국세인 부가세의 납부 용도에 맞게 환급금을 철저히 관리해 차후 발생할 국세 미납 등을 철저히 예방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 세무 전문가는 “수탁자의 지위에서 신탁사가 신탁재산 전부를 관리하는 신탁사업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부가세 환급 제도와 달리 볼 수 있다”면서 “신탁사가 신탁재산으로 부가세 환급금을 받은 뒤 위탁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부가세 환급금 청구권 양도 문제 등은 부동산 신탁사업에서 고질적으로 제기되는 불공정 약관 및 부당한 영업 논란 등이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탁사업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제도적 개선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신탁사업의 불법계약서(약관) 및 불법 영업 실태 등에 대한 개선책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단체 불법퇴치본부(대표 정유경)에 따르면, 한자신은 2019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불공정 약관 13개 조항에 대한 ‘시정권고’를 받았다. 또 해당 사안과 관련,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올해 1월 한자신을 15개 불공정 약관이 자본시장법 위반 등에 해당한다고 제재를 했다.

정유경 불법퇴치본부 대표는 “금융투자업자인 한자신을 감독해야 할 국가기관인 금감원과 금융위원회, 공정위가 ‘시정권고’에 따라 불법 약관을 개정한 뒤에도 지금까지 이를 공표하지 않고 오히려 전국의 피해자 구제를 외면하고 불법을 은폐하고 있다”면서 “한자신은 2019년 공정위의 ‘시정권고’  후에도 전국의 부동산 신탁계약 고객들과 개정된 약관으로 계약서를 변경하지 않았고,  올해 3월에는 급기야 강릉지역 한 신탁사업 현장의 위탁자가 극단적 선택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탁사업 피해 위탁자 단체 측은 ‘신탁사가 우월적인 지위에 따라 조세포탈과 부정환급을 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정 대표는 “신탁사인 수탁자가 고객과 신탁계약과 동시에 ‘국세(부가가치세) 환급금 양도’를 받은 후 사실을 세무서에 통지까지 하게 하고 정작 부가세 납부 의무는 위탁자에게 책임을 지워 금융고객인 위탁자의 개인재산으로 납부하는 피해까지 부담시켜온 것은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등 국가기관들이 불법을 방치한 것”이라며 “전국 신탁현장에서 금융약자인 고객들을 상대로 부가세 환급금을 양도받은 후 신탁법상으로도 신탁재산과 구분되는 위탁자 개인재산에 국세 납부 의무까지 지운 것은 중대한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올바른 징수와 위탁자 등 신탁사업의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전국 신탁사업 현장에 대한 부가가치세 환급금 양도 실태 조사와 함께 제도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불법퇴치본부는 지난달 30일 서울지방국세청 역삼세무서에 대구 수성구 오피스텔 신탁사업 등 전국 신탁사업 현장의 부가세 환급금 논란과 관련, “국세(부가가치세) 환급금 양도요구서를 이용한 탈세와 부정환급 행위의 불법성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고발했다.

단체는 앞서 지난 7월 신탁사 등이 2019년 충북 보은군 신탁사업 현장인 S아파트의 383채 미분양 신탁재산 매도 당시 341억원 상당 허위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해당 채권을 이용해 특정 금융기관 26개 지점으로부터 450억원을 부정대출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조세범처벌법 위반 및 탈세 혐의로 서울지방국세청에 고발해 조사 중이다.

또 서울 수서경찰서는 해당 사안과 관련해 횡령과 배임, 소송사기 혐의로 고발된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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