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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시사칼럼] 인공지능 시대의 한글

한양경제 2024-10-29 11:39:10
한글의 우수성은 컴퓨터와 디지털 시대에, 특히 오늘날 갈수록 각광을 받고 있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더욱 빛나고 있다. 한글의 음성학적 과학성과 음운론적 체계성이 디지털 시스템과 정합성이 큰 때문이다. 오늘날 보편적이고 필수적인 개인들의 생활 기기인 개인 컴퓨터,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에 한글을 사용하면 문자 입력의 용이성과 속도에서 다른 문자에 비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율적이다.

특히 한자를 쓰는 중국이나 한자와 음절문자인 히라가나를 함께 쓰는 일본에 비해서는 압도적이다. 한글의 경우 자판의 글자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입력 자체가 간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글의 우수성은 입력의 속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한글은 자모의 조합만으로 11,172자, 여기에 초중종성의 요소를 더하면 1,638,750자의 표기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한글은 모든 외국어 음성은 물론 자연의 소리까지 거의 다 원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다.

그래서 한글은 인공지능 시대에 디지털 소통의 수단으로 기술의 혁신에 기여하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단순한 기능 수행을 초점을 맞추었던 1세대에서 진화하여 인간의 지적 능력을 보조하고 확장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2세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번역, 교육, 국제 비즈니스, 자율주행, 스마트 시티 등에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공지능 모델의 기본 스크립트(script)로 한글이 최적이라는 평가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실제로 구글, 엔비디아, 넷플릭스, 테슬라, 테크 퓨전 등의 유수한 기업들을 포함하여 실리콘 밸리 인공지능 연구에서 한글이 그 토대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MIT의 언어 공학자 제임스 윌슨(James Wilson) 교수는 “한글은 인류의 소통과 이해를 돕는 위대한 유산”이라고 말했다. 구글의 연구원 에단 스콧(Ethan Scott)도 “한글은 단순한 한국의 문자가 아니라 글로벌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 도구로 자리잡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맥락에서 교수이자 소설가인 이인화 씨는 세종의 이름을 따 “이도 문자”라고 명명한 한글의 우수성을 주제로 《2061년》(2021)이라는 과학 픽션 스릴러물 형식의 장편소설을 저술했다. 이 소설의 무대가 된 2061년의 세계에서 인간은 고도로 정교화된 인간형 로봇과 공존하고 심지어는 그런 로봇과 결혼하여 반은 인간이고 반은 로봇인 혼종까지 낳았다. 이들 로봇과 혼종은 자신들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이들 소통하는 로봇이나 혼종은 언어학에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면, 이들은 인간의 것과는 다른 자신들 고유의 음성 전달 기구를 갖기에 이들의 발음은 기존의 대부분의 인간의 문자로는 표기할 수 없다. 그 결과 인간의 소리뿐만 아니라 짐승, 물상, 기계를 비롯한 어떤 소리도 표기할 수 있는 그래서 이들 로봇의 음성도 표기할 수 있는 이도 문자를 많은 나라들이 자신의 문자로 채택하게 된다. 그 결과 이도 문자만 살아남고 다른 문자들은 거의 다 사라지게 된다. 이 소설은 이 이도 문자의 지배를 두고 벌어지는 세계적 다툼의 이야기다.

인공지능에 한글이 핵심 도구로 채택되고 있는 경향을 ABC 방송의 사라 톰슨(Sarah Thompson) 기자는 “미국 인공지능의 숨겨진 비밀: 한국 문자의 역할과 그 파장”이라는 프로그램으로 방송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인공지능 개발에서, 특히 테크 퓨전사가 성공시킨 인공지능에서 한글이 그 기본 스크립트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국가 안보, 문화적 영향력, 글로벌 기술 경쟁 등의 다양한 측면이 고려될 것이기에 앞으로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그러한 고려로 모든 곳에서 인공지능 모델의 기본 문자로 한글이 채택되는 것이 제한을 받을 수도 있다 뜻이다. 그러나 그런 고려가 배제된다면 한글은 그 음성학적 과학성과 음운론적 체계성으로 인공지능 기술에 최적화된 최고의 문자인 것이다.

심지어 미국 하버드대 신경과학 교수 찰스 넬슨(Charles Nelson)의 지적처럼, “한글은 단순한 문자 체계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 능력을 깨우는 과학적 도구”로 각광을 받고 있기도 하다. 한글은 그 학습 시 이른바 “한글 효과”라는 특수 효과를 발휘하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는 한글을 읽을 때 뇌의 여러 부위가 조화롭게 활성화하는데, 특히 정보를 처리하는 좌측 후두엽과 언어 이해 능력과 관련된 좌측 두정엽이 활성화하는, 독특한 뇌 활성화 패턴이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그래서 하버드대는 ‘글로벌 언어 인지 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글을 중심으로 언어와 인지 발달의 관계를 그리고 이를 교육과 치료에 적용하는 것을 연구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자폐아와 언어장애아들에게 한글 학습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이제 한글은 특수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도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한글 효과”로 인해, 특수 교육, 심리학, 신경과학 분야에서 한글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식민지 지배와 수탈 그리고 동족상잔의 폐허 위에서 불과 두 세대 만에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한국인들의 근면성과 영민성과 교육열도 작용했지만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한글 덕택에 한국인의 문해율이 매우 높은 데다 “한글 효과”에 의해 학습과 정보 습득이 빠르고 따라서 생산성이 높았던 덕도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러한 효율적인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 감사할 일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기초 문자로서 한글을 더욱 연구하고 널리 보급시켜 효율적인 세계적 소통에 기여하는 일은 우리 후손의 과업이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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