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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21> 혹한의 계절

일월은 혹한기로 영하의 추운 날씨
햇볕은 약한 데다 삭풍은 세어지니
추위는 기가 승해져 강물조차 얼리네
한양경제 2025-01-20 08:56:12
이효성

새해가 시작하는 날인 1월 1일은 한자어로는 연초일(年初日) 또는 원일(元日)로 불리고, 우리말로는 새해 첫날 또는 설날로 불린다. (오늘날 ‘설날’은 주로 음력 상의 새해 첫날을 지칭함.) 그런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양력인 그레고리력에서 설날은 역법 상 특별한 의미가 없는 날이다. 고대 주(周)나라에서는 동짓날을, 고대 로마에서는 동지 후 첫 합삭(合朔: 음력 초하루로서 태양과 지구 사이에 달이 들어가 일직선을 이루는 때로 달이 보이지 않는 때임)을,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쓰고 있는 음력(정확히는 태음태양력)에서는 동지 다음의 두 번째 합삭을, 설날로 하고 있다. 이는 설날을 역법 상의 의미 있는 날로 한 것이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 양력 1월 1일은 새해를 맞기에는 너무 추워 시기적으로도 적당치도 않다. 겨울에도 대체로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지역인 로마 제국을 비롯한 지중해 연안지역에서는 양력 1월 1일이 새해를 맞기에 무리가 없는 때다. 이처럼 온대지역에서 지중해 연안지역을 제외한 그 외의 지역에서 양력 1월 1일은 새해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춥고 역법 상 의미도 없는 날이지만, 이미 전세계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레고리력을 쓰면서 그날을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날 벽두에 많은 이들이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찾아 해맞이를 한다. 사람들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며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경건하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새해의 다짐’을 하기도 한다. 1월 1일은 송구영신의 신성한 날인 것이다. 그래서 시작과 문의 신인 야누스(라틴어 Ianus, 영어 Janus)를 섬기던 로마인들은 모든 시작에, 특히 한 해를 시작하는 새해 첫날에, 야누스의 축복을 빌었고 새해 첫 달인 1월을 ‘야누스의 달(라틴어 Ianuarius, 영어 January)’로 명명했다.

그레고리력에서 겨울은 12월, 1월, 2월의 3개월이므로 1월은 겨울의 한 가운데 달인 한겨울인 셈이다. 1월은, 낮이 가장 짧고 따라서 복사열이 가장 적고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동지(冬至)로부터 열흘 후에 시작되기 때문에, 연중 가장 추운 때이기도 하다. 동지부터 낮이 조금씩 길어지기는 하지만, 1월은 여전히 낮이 밤보다 훨씬 더 짧아 복사열이 적은 데다 추위에 의해 지구가 점점 더 차가워진다.

게다가 한반도에는 시베리아로부터 삭풍으로 불리는 차디찬 북서계절풍이 세차게 불어온다. 그래서 1월은 가장 추운 때로 간주되며 절기력에서 겨울의 극절기(極節氣)로 불리기도 하는 ‘소한(小寒)’ 및 ‘대한(大寒)’ 절기가 1월에 있다. 실제로 1월은 월 평균기온이 0도 이하로 떨어지고 강물도 얼어붙는 최고의 혹한기다. 추위는 대체로 ‘소한’과 ‘대한’ 어간에 최고에 달했다가 대한 끝 무렵부터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한반도의 겨울 추위는 상당하다. 언제부턴가 온난화 현상으로 겨울이 난동(暖冬)인 경우가 많아 한겨울에도 한강이 꽁꽁 어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반도의 겨울 추위는 결코 만만치 않다. 강원도를 비롯한 산간지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과거에는 더욱 그랬다. 한강이 꽁꽁 얼어 그 위로 자동차가 지나다녔고, 커다란 톱으로 두꺼운 얼음을 잘라 냉장, 빙수, 조각 등에 활용했다.

한국전쟁 때의 사진이나 영상에 군인들이 겨울에 추위로 악전고투하는 장면들이 많다. 많은 병사들이 겨울 동안의 전투에서 적탄에 의해서가 아니라 추위에 의해 동사했다는 기록들이 많다. 난동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한겨울에는 특히 1월에는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을 보이고 때로는 한강이 얼어붙기도 한다.

추위에 약한 생명체에게 겨울 특히 혹한기인 1월은 죽음의 계절이기도 하다. 온대지역에서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서 겨울의 혹한을 견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늦가을에 혹한을 견딜 수 있는 월동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겨울은 곧 죽음을 뜻한다. 그래서 모든 동식물은 겨울잠의 형태로 겨울을 나는 나름의 월동대책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많은 동식물이 겨울에 죽음을 맞는다. 남녘에서의 동백 등을 예외로 거개의 식물들은 아예 1월에는 꽃을 피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여름과 가을에 성숙시킨 씨앗으로 겨울을 나고 생명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추위에 완벽히 적응한 식물들은 겨울을 겪어야 잎눈과 꽃눈이 분화하여 봄에 꽃과 잎을 피울 수 있게 된다. 인간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따뜻한 집이나 은신처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겨울에 사망하거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 가운데 일부는 추위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1월의 혹한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추위는 대체로 사람들을 따뜻한 방안에 가두어놓아 비활동적으로 만들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추위는 눈과 얼음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활력과 기쁨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눈과 얼음은 겨울 스포츠의 중요한 수단이어서 이들이 있기에 동계 올림픽이 열릴 수 있고, 스키나 스케이트나 썰매 등을 탈 수도 있다. 아이들은 얼음지치기나 눈싸움이나 연날리기 등으로 추운 겨울을 오히려 신나게 지낼 수 있다.

또 추위는 눈과 상고대로 봄, 여름, 가을에 피는 실재의 그 어떤 꽃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눈꽃을 피워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겨울은 특히 1월은 그 추위로 사람들에게 역동적인 스포츠를 가능하게 하고 화사한 눈꽃을 선사하는 때인 것이다. 추위는 또 주택 및 난방 기술, 식품 저장 및 보관 기술, 따뜻한 의복 제작술 등으로 문명을 발전시키고, 사색의 시간을 주고, 인내력을 키워준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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