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1960년대의 가요이지만,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에 도시의 화려한 풍경이 담겼다면,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에는 짙은 우수와 비애가 배어있다. 하지만 낮은 성음으로 토로한 도시의 그늘에도 뭔가 세련된 도시적 감성이 녹아 있음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배호의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는 근대화의 도시 서울 한가운데에도 가슴 속에 비가 내리고 사랑을 잃은 사나이가 슬픔에 젖어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서울의 찬가’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분위기이다. 세상만사 빛이 강하면 그늘도 짙은 법이다. 광명의 도시에도 그늘이 있었고, 도시인의 삶에도 우수가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비감이 어린 도시의 감수성은 도시화‧산업화 된 서울의 또 다른 얼굴이다.
‘돌아가는 삼각지’는 사모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삼각지 로타리를 흐느끼며 돌아가는 눈물 젖은 남자의 비련을 담았다. 노래는 음악에 대한 꿈과 열정을 마음껏 피워보지도 못한 채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야 했던 고독한 영혼의 절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어쩌면 이 불운한 천재 가수의 처절한 울부짖음에도 과거와는 다른 도시만의 색조가 스며있음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 중국 산동성에서 광복군의 아들로 태어난 배호는 해방 후 피란생활과 건강악화로 아버지가 일찍 타계하면서 삶의 무게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음악가인 외숙부들의 영향으로 드럼을 배우고 미8군 무대로 진출하게 되면서 대중가요와 인연을 맺었다. 오랜 가난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는 신장병이 깊어가는 어느날 먼 친척뻘인 성주 출신 작곡가 배상태가 곡을 들고 찾아왔다.
배호는 노래의 쓸쓸한 분위기가 자신의 처지와 닮았다며 곡을 받아들였다. 대중의 가슴을 깊이 파고드는 명곡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 그렇게 탄생했다. 배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취입을 마쳤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뒤따라 나온 ‘안개 낀 장춘당공원’도 서울의 지명과 도시의 실루엣을 담은 노래이다.
노래 제목의 ‘안개’라는 단어에서 벌써 실연과 방황의 정서가 떠오른다. 농촌의 안개가 목가적인 풍경이라면 도시의 안개는 불투명한 현실이다. 그것은 배호의 물기 어린 성음과도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너무나도 그 임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 원한 맺힌 마음에 잘못 생각에, 돌이킬 수 없는 죄 저질러 놓고, 흐느끼면서 울어도 때는 늦으리, 음~~ 때는 늦으리’
16세 소녀 가수 문주란이 부른 ‘동숙의 노래’는 도시의 화려한 불빛 아래 짙게 드리워진 암영(暗影)이다. 도회지의 공장에 취직해 시골 부모의 생활비와 동생의 학비를 보태며 주경야독하던 여인과, 그녀의 순수한 사랑을 악용하고 배신했던 도시 학원 강사의 비련을 그린 노래. 한산도가 실화를 바탕으로 가사를 쓰고, 백영호가 허스키한 중저음에 맞춤 작곡을 한 ‘동숙의 노래’는 문주란 시대의 서곡이었다.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트로트 문법을 차용했지만 기존의 트로트와는 결이 달랐다. 노래에 스며있는, 비록 어두운 느낌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도시적인 분위기의 배경도 그렇다. 중량감 있는 직선적 목소리가 일말의 클래식한 비애미를 풍기는 것도 닮았다. 1960년대의 트로트 음악으로서 시대적인 조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도시적인 정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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