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를 선도하는 '경제 나침반'

빅스비, 이대로 괜찮나? – 한국 AI 음성비서의 현주소

삼성전자, 빅스비 중심 통합 플랫폼 확대
빅스비, 낮은 맥락 이해력과 연동성 제한은 단점
시리·알렉사·구글 어시스턴트와 격차 더 벌어져
하재인 기자 2025-04-01 10:07:00

“빅스비, 세탁기 켜줘.”

“죄송해요,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른바 ‘스마트한 일상’의 대표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AI 음성비서. 하지만 사용자 경험은 기대와 거리가 멀다. 삼성전자가 2017년 선보인 음성비서 ‘빅스비’는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가전제품까지 영역을 넓혔지만, 정작 사용자들의 체감도는 여전히 낮다. “존재감은 있으나 실효성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삼성전자 빅스비 로고. 삼성전자

‘비서’라기엔 엉뚱한 답변이 더 많다

갤럭시 유저 김지현(35) 씨는 최근 세탁기를 작동시키기 위해 빅스비를 호출했지만, 청소기 작동 알림을 받았다. 명령어 인식이 제대로 되지 않거나, 대화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빅스비는 처음엔 스마트폰 중심의 음성 인터페이스로 시작됐지만, 이후 냉장고·세탁기·로봇청소기 등 생활가전으로 범위를 넓혔다. 이번 ‘비스포크 AI’ 시리즈에도 업그레이드된 빅스비가 탑재됐다. 가족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보이스ID’ 기능도 새로 추가됐다. 그럼에도 실사용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기능은 많지만 불편하다”, “시리나 구글 어시스턴트보다 덜 똑똑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삼성전자가 3월 28일 진행한 웰컴 투 비스포크 AI 행사에서 패밀리허브 냉장고의 빅스비에게 “하이 빅스비, 내 폰 찾아줘”라고 하면 목소리를 식별해 휴대폰의 벨 소리를 울려주는 빅스비의 기능을 소개했다. 삼성전자

삼성은 왜 빅스비를 계속 밀고 있을까

빅스비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빅스비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AI 가전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삼성은 ‘스마트싱스(SmartThings)’라는 통합 플랫폼을 통해 스마트홈 생태계를 확대하고 있다. 빅스비는 그 중심에 있다. 터치 없이 말로 조작하는 인터페이스는 고령자, 어린이, 다인 가구 환경에서 편리성을 높인다.

또한 최근에는 빅스비를 통해 가전 제품 간 연동뿐 아니라, 원격 모니터링, 에너지 소비량 분석, 실내 활동 감지까지 지원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AI 가전에서 음성비서는 단순한 명령이 아닌, 상황 인지 기반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성현 AI산업연구소 소장은 “삼성은 글로벌 플랫폼과 차별화를 위해 하드웨어 기반의 통합 생태계 전략을 추진 중이며, 빅스비는 그 중심축이지만 기술보다는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지속적인 리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미국법인 조나단 가브리오가 현지시간 1월 6일 진행된 ‘CES 2025 삼성 프레스 콘퍼런스’ 행사에서 ‘맞춤형 홈’ 경험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삼성전자

시리·알렉사·구글 어시스턴트와의 격차

하지만 빅스비는 여전히 글로벌 경쟁자들에 비해 체감 성능에서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애플의 ‘시리’는 기기 간 대화 연속성에서 앞서고, 구글 어시스턴트는 검색·일정 관리·다국어 처리에서 강점을 갖는다. 아마존의 ‘알렉사’는 수천 개의 스킬을 탑재해 음악, 쇼핑, 홈오토메이션까지 확장성을 자랑한다.

이에 비해 빅스비는 한국어 음성 인식률은 우수하지만, 대화 지속성과 맥락 이해력이 낮고, 앱·서비스 연동성이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가전 제어에 최적화된 플랫폼으로는 가능성이 있으나, 범용 AI 음성비서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정은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은 “빅스비는 하드웨어와 결합된 형태로 기술적 완성도는 높지만, 소프트웨어적 확장성과 개방성 측면에서 글로벌 시장 요구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왼쪽부터 시리 이미지, 아마존 알렉사 로고. 애플·아마존

기능은 되는데, 왜 안 쓰게 될까

AI 음성비서의 문제는 단순히 ‘되는가’가 아니라 ‘쓰게 되는가’에 있다. 음성비서는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데이터를 쌓아야 발전한다. 그러나 사용자들이 신뢰하지 않으면 이 같은 선순환은 작동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 소비자들은 AI 음성비서를 ‘꺼두는 게 낫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 우려, 오작동 스트레스, 실제 활용성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결과적으로 음성비서는 ‘있으나 마나한 기능’으로 여겨지고, 기기에서 사용률은 10%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빅스비의 과제가 기술적 성능이 아닌 UX(사용자 경험) 설계에 있다고 지적한다. 애플은 시리를 ‘개인 비서’로, 아마존은 알렉사를 ‘가정 내 조력자’로 포지셔닝해왔다. 소비자가 음성비서를 특정 성격이나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반면 삼성의 빅스비는 명확한 정체성을 부여하지 못했다. 단순한 명령어 인터페이스 수준을 넘지 못하면서, 사용자와의 정서적 거리도 줄이지 못했다는 평가다.

AI 가전이 일상화될수록, 음성비서는 브랜드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다. 사용자가 말을 걸고 싶어야 비서로서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있는 듯 없는 듯 묻혀버린 기술이 될 수 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
3년 뒤 주택 공급난 닥치나

3년 뒤 주택 공급난 닥치나

향후 2~3년내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난 영향으로 집값 상승 우려가 있다고 한다. 특히 차기 정부가 현 정부의 주택공급 정책을 이어서 시행

DATA STORY

더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