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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47> 물레방아의 추억(1)

한양경제 2025-04-03 15:43:45
물레방아는 고향이라는 공간의 토속적인 풍물로 자연 친화적인 정서를 반영한다. 물레방아는 망향가의 중요한 모티브로 회귀 본능과 귀향 의식를 자극하는 서정적· 서사적 시공간이었다. 변함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는 인생의 유한성, 상실의 비애감과 대비를 이루며 우리 문학 작품이나 옛 이야기의 전개에서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 속의 주제나 소재로도 종종 활용되었다. 

‘맨드라미 피고 지고 몇 해이던가, 물방앗간 뒷전에서 맺은 사랑아, 어이해서 못 잊느냐 망향초 신세, 비 내리는 고모령을 언제 넘느냐’. 1948년 해방정국의 혼란 속에 유행한 ‘비 내리는 고모령’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사모곡(思母曲)과 망향가(望鄕歌)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2절 가사에서 물레방앗간이 등장하고 그곳에서 맺은 사랑을 잊지 못한다. 물레방아의 폭넓은 기능성이다. 

물레방아는 고향 그 자체였다. 고향의 풍경을 상징하는 공간이면서, 곡식을 가공하는 단순한 시설을 넘어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사회적 공간이었다. 물레방아를 이용하기 위한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농사와 생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며, 사회적 유대를 강화할 수 있었다. 농촌 지역에서 물레방아는 이와같이 중요한 커뮤니티 활동의 장소였던 것이다.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1954년 박재홍이 부른 ‘물레방아 도는 내력’은 전란의 상처와 각박한 도시의 삶이 소환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정겨운 고향의 흙냄새 속에서 소박한 삶을 일구어 나가고 싶은 심정을 대변한 것이다. 

물레방아는 고즈넉한 시골의 전형적인 풍경이자 정경이었으며, 고향 사람들의 숱한 애환과 사연을 간직한 곳이기도 했다. '물방아 도는 내력을 알아보련다'는 것은 팍팍한 도시의 삶을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하고 싶은 귀향의 정서적 표현이었다. 1973년 홍세민이 노래한 ‘흙에 살리라’는 도시인들의 망향가가 아닌 고향을 지키는 사람의 애향가 형식을 띠고 있다.  

‘물레방아 돌고 도는 내 고향 정든 땅, 푸른 잔디 베개 삼아 풀내음을 맡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내 사랑 순이와 손을 맞잡고 흙에 살리라’. 이 노래 2절 가사에 나오는 물레방아는 그야말로 내 고향 정든 땅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또한 고단한 도시생활에서 비롯된 귀거래사(歸去來辭)의 역설적 표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돌담길 돌아서며 또 한번 보고, 징검다리 건너갈 때 뒤돌아 보며, 서울로 떠나간 사람, 천리타향 멀리 가더니 새봄이 오기 전에 잊어버렸나,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 1970년대 나훈아의 절창 ‘물레방아 도는데’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이촌향도의 가슴 시린 자화상이다. ‘고향의 물레방아 오늘도 돌아가는데’라는 가사의 마지막 구절 하나만으로도 당시 농촌사회의 애환을 대변하고도 남는다.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간 사람과 농촌에 남은 사람들의 상실과 비애의 감성을 ‘물레방아’라는 상징적인 단어에 이입(移入)한 것이다. 물레방아는 이제 세월의 변화에 따라 하나둘 모습을 감추었고 관광시설로 일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방아가 없이 물레만 남았거나, 물살이 아닌 전기의 힘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옛 정취는 사라진 지 오래이다. 물레방아에 실었던 고향의 서정도 그렇게 사위어갔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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