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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수혜주 조선업, 이번엔 탄소배출권 덕 본다

탄소포집저장(CCS) 시대, 운송 수단까지 달라졌다
파이프라인보다 유연한 해상 운송
해운사·조선사 모두 '움직이는 CO2'에 주목
2500척 시대 연다…새로운 물류산업 부상
하재인 기자 2025-04-17 10:14:46

"탄소도 실어 나르는 시대다." 탄소배출권 제도가 전방위적으로 강화되면서 포집된 이산화탄소(CO2)를 이동시키는 운반선 시장이 조용한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이제 탄소 감축은 공장 굴뚝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포집된 탄소를 어디로, 어떻게 옮길 것이냐가 산업계의 새로운 숙제로 떠올랐다.

HD현대미포가 진수한 세계 최대 2만2천 세제곱미터(㎥)급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HD현대

탄소포집저장(CCS) 시대, 운송 수단까지 달라졌다

최근 HD현대미포가 진수한 2만2000세제곱미터(㎥)급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LCO2c)은 이 같은 변화의 상징이다. 단일 선박 기준 세계 최대 규모로, 기존 7500㎥급 운반선 대비 약 3배 이상 크다. 단순한 선박이 아닌, 탄소포집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 시장 확대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고 있다.

EU는 올해부터 배출권 거래제(EU ETS)를 해운업에까지 확대 적용했다. 이에 따라 유럽을 오가는 선박들은 배출량에 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하에 CCS 프로젝트에 막대한 세액공제를 부여하며 관련 인프라 확장을 촉진 중이다. 한국 또한 배출권 단가가 꾸준히 오르고 있어 산업계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포집된 탄소를 저장하지 않으면 감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다.

이 같은 제도 변화에 따라 CCS 기술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발전소, 제철소, 시멘트 공장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현실적 대안이 CCS다. 글로벌 CCS 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CCS 프로젝트 수는 2020년 65건에서 2024년 196건으로 세 배 증가했다. 이 중 상당수가 해상 수송과 저장을 병행하는 형태다.

2010년 이후 상업용 CCS 시설 파이프라인의 CO2 포집 용량. 글로벌 CCS 연구소 보고서

파이프라인보다 유연한 해상 운송

이산화탄소 수송은 파이프라인 방식과 선박 방식으로 나뉜다. 파이프라인은 대규모·고정 노선에는 적합하지만, 설치 비용과 부지 확보가 문제다. 이와 달리 해상 수송은 다양한 지역에서 포집한 탄소를 집하한 뒤 저장소로 운반할 수 있어 유연성과 경제성이 높다. 운반선 시장이 떠오르는 이유다.

한국해양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김용진 교수는 "LCO2 운반선은 단순한 친환경 선박을 넘어, 향후 기후산업 물류체계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앞으로 조선업의 수주 패러다임이 연료와 에너지 중심에서 탄소 수송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특히 LCO2 운반선은 기존의 액화석유가스(LPG)나 암모니아 운반선과 달리, 복합 화물 운송이 가능하다. 이번에 HD현대미포가 진수한 선박은 영하 55도의 초저온 상태를 유지하는 바이로브형 저장탱크 3기를 탑재해 LPG, 암모니아, 액화이산화탄소를 모두 운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귀항 시 빈 선박이 아닌, 다른 화물을 싣고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해운사로선 수익성이 높다.

한화오션이 개발하고 기본 승인을 획득한 대형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 조감도. 한화오션

해운사·조선사 모두 '움직이는 CO2'에 주목

이미 글로벌 해운사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암모니아 운송 시장을 겨냥한 VLAC 발주가 늘어나는 가운데, 동일 스펙에서 CO2 운송이 가능하다는 점이 주목받고 있다. 초기에는 LPG나 암모니아를 운송하고, 향후 CCS 시장이 커지면 CO2로 화물을 바꾸는 방식이다.

조선사들도 기술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는 울산 본사에 선박 탄소중립 R&D 실증설비를 구축하고, 저장탱크 용접재료와 화물운영시스템 등 핵심 부품의 안정성을 검증해왔다.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도 LCO2 선박 설계 및 수주를 겨냥해 기술 개발에 나섰다. 조선업계는 향후 이 시장이 LNG 운반선 시장만큼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MISC와 공동 개발한 부유식 이산화탄소 저장·주입 설비(FCSU). 삼성중공업

2500척 시대 연다…새로운 물류산업 부상

시장 전망도 긍정적이다. 영국 클락슨리서치는 2050년까지 연간 6기가톤(GT)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저장해야 하며, 이 중 20%는 해상으로 수송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약 2500척 이상의 LCO2 운반선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현재 운항 중인 선박은 일부 파일럿 단계에 불과하다.

해운물류연구원 박은경 연구위원은 "탄소배출권 단가가 계속 오르고 있고, 육상 저장시설보다 해양 저장소 확보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지면서 해상 운반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며 "지금은 과도기지만, 5년 내 대형 수주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탄소배출권 제도 강화는 해운·조선업에 새로운 기회를 던지고 있다. 과거 화물을 실어나르던 선박이 이제는 기후위기 해법의 전면에 나서는 시대다. 운반선은 더 이상 뒤처진 물류 인프라가 아니다. 기후 산업의 핵심 축으로, 새로운 가치를 실어 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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