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가 미국에서 분기·월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는 동안, 국내 주식시장에서 주가는 제자리 걸음이다. 표면상 ‘실적 호조=주가 상승’의 공식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로 시장은 한목소리로 ‘대미(對美) 관세 불확실성’을 지목한다. 관세가 비용과 가격 전략을 동시에 옥죄며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할인)를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관세 해소의 신호탄만 켜지면 주가의 복원 탄력이 커질 것이란 기대와, 협상이 길어질수록 체감 손익이 더 훼손될 것이란 우려가 교차한다.
14일 코스피에서 현대차 주가는 2.06% 오른 22만3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한달 기준 상승률은 3.26%로 박스권에 갇힌 모양새다.
1개월 기준(4.58%) 코스피 상승률은 물론, 6개월 기준으로도 현대차 주가 상승률은 23.81%로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인 45.21%에 크게 뒤진다. 코스피 랠리에 현대차가 탑승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 판매는 ‘사상 최고’, 주가는 왜?…‘영업이익 전망 하향’이 던진 신호
현대차 미국법인은 9월 판매 7만1003대로 전년 동월 대비 14% 증가, 9월 기준 역대 최고 기록을 발표했다. 전기차·하이브리드 판매가 동력을 이끌었다. 기아도 9월 6만5507대, 3분기 누적 사상 최대 분기 판매를 공시했다. 판매 부문만 보면 북미 사업의 체력은 견조하다.
그럼에도 주가가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관세 변수’가 놓여 있다. 미국은 일본산 승용차 관세를 15%로 낮추는 방안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반면, 한국산에 대해서는 25%의 기존 관세가 유지되는 구도가 장기화하고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지난 13일 보고서에서 "현대차의 판매 호조에도 영업이익 기여는 제한적일 것"이라면서 "관세 협상의 지연으로 관세관련 이익 전망치 하향요인이 상존하고, 소비 침체 등의 우려로 자동차 판매에 대한 전망도 좋지 않다"고 설명했다.
윤혁진 SK증권 연구원은 1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10월부터는 미국 전기차 시장이 급랭하고 관세부과 전에 확보했던 재고가 소진되면서
관세 관련 비용이 상승할 수 있고, 9~10월 출시되는 연식 변경 차량 가격 인상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 등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면서도 "하지만 일본, 유럽과 관세율 차이(10%포인트)에 따른 가격 경쟁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사상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앞으로 시나리오는...협상 타결 '타이밍'에 주목
문제는 타이밍이다. 미·한 간 관세 인하(25%에서 15%)를 둘러싼 정치·통상 협상은 방향성에 공감대가 있어도 시행 시점이 확정되지 않았다. “감세가 ‘될 것’ 같다”와 “언제 ‘되는지’ 모른다” 사이의 간극이 크다. 시행 지연은 분기 실적마다 관세비용이 온기로 반영되는 구조를 만들고, 증권사 컨센서스 하방 리스크로 되돌아온다. 일본 완성차가 15% 적용 국면에 들어서면 가격경쟁력 격차도 벌어진다.
관세 인하 서명·발효 시점이 명확해지면 즉시 실적 추정치와 멀티플의 재평가(리레이팅)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업계·정부 레벨의 추가 투자 발표, 현지 생산 확대 로드맵도 협상 동학에 영향을 준다. 최근 미·한 통상 대화에서 한국 측 “관세 인하 시점 미정” 메시지가 재확인된 만큼, 뉴스 플로우에 민감한 종목 특성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하이브리드(HEV)·SUV·제네시스 등 고마진 차종 비중 확대는 관세 비용을 일부 상쇄한다. 9월 실적에서 확인된 전동화 차종의 고성장은 긍정적이며, 연말 시즌 프로모션 전략의 효율성이 이익 방어의 관건이 된다.
고배당·자사주 매입은 관세 변수 하에서도 ‘하방 버팀목’으로 작동한다. 다만 관세가 유지되는 동안에는 주가 재평가의 ‘결정적 조건’이 되긴 어렵다.
현대차는 북미에서 팔리고, 잘 팔리는 차종이 늘고, 가격도 받쳐주는 국면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관세라는 ‘정책 변수’가 비용과 심리를 동시에 눌러 주가의 복원을 지연시키고 있다. 관세 시행 지연이 계속되면, 분기 실적 발표 때마다 눈높이를 낮추는 방어적 장세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 현대차의 주가 부진은 펀더멘털의 실패가 아니라 ‘정책 타이밍’의 문제라는 점에서, 관세 뉴스의 방향성 전환은 곧바로 차트에 새겨질 가능성이 높다.
한편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15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장관과 회담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구 부총리는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실용에 입각한 타결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3,500억 달러 현금 투자를 고수하는 미국이 기술 협력, 공동 개발, 금융 지원 등 한국 측이 제시한 다양한 대안 투자 방식 중 어떤 카드를 수용할지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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