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주필의 시사풀이] 한국과 미국의 새로운 관계
2025-09-15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정비된 광통신망으로 디지털 시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IT 산업의 강국이 되었고, 과감한 투자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 전지, 철강, 자동차, 조선, 원자력, 수소, 방위 산업 등의 거의 모든 주요 산업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인공 지능 시대의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 디스플레이, 배터리, 양자 컴퓨팅, 전력, 통신 등의 첨단 및 핵심 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기술 강대국이 됐다.
이에 한국은 감히 디지털 문명의 수도, 또는 디지털 시대의 총아(寵兒)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양자 컴퓨팅, 2차 전지, 전력 설비, LNG선 및 쇄빙선과 같은 부가가치가 높은 고기술 선박 제조 기술에서는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세계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은 2025년도 현재 국가의 R&D 투자는 GDP 대비 4.96%로 세계 2위, 기업의 R&D 투자는 세계 1위, 혁신 지수는 세계 4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한국의 기술 없이는 인공 지능 시대를 제대로 열 수도 없게 되었다. 인공 지능의 핵심 부품인 HBM의 한국 점유율이 80%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엔비디아를 비롯한 주요 칩 설계사들, 주요 플랫폼 회사들, 테슬라 등의 주요 전기차 회사들이 한국의 메모리 칩과 전력 설비를 필요로 한다. 한국의 메모리칩을 비롯한 한국의 선도적인 기술이 없이는 AI, 5G, 데이터 센터의 구축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삼성과 23조원 짜리 반도체 공급 계약을 맺었고, 세계최대 자사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수십조 투자해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2~3십만장)를 만들어 한국을 아시아의 AI의 수도 만들겠다는 언약했고, 오픈AI의 샘 알트만은 ‘스타게이트 프로젝트’(700조 원)를 제안하는 등으로 한국 기술력에 대한 구애가 쏟아지고 있다. AI 핵심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한국의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가 필수이고, AI 데이터 센터를 위해서는 반도체, 전력, 냉각, 조성 등의 기술을 모두 갖춰야 하는데 이 모든 기술력과 인프라와 안정성을 갖춘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디지털 경제와 전지구적 소통의 시대에는 지정학이 아니라 기술이 혁신, 지식 및 상호연결을 통해 나라나 도시로 하여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21세기는, 그 이전의 세기와는 달리, 영토의 시대가 아니라 기술의 시대로 말해진다. 기술적 혁신이 전통적인 지리에 기초한 권력을 대체해 전지구적 권력, 경제적 이점 및 영향력의 주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의 이동은 나라 간의 경쟁이 단지 군사력이나 물리력보다는 지적 자본과 혁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오늘날 인터넷과 통신은 상업에서 사회 운동까지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는 전지구적 소통망을 창조했다. 그래서 이제 권력은 과거처럼 거의 전적으로 국가의 크기와 물리적 자원에서 나오기 보다는 기술과 혁신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에서 나온다. 말하자면, 새로운 국경은 지리적이라기보다는 기술적이다. 이에 21세기의 전쟁을 이기는 열쇠는 과거처럼 땅에 대한 통제가 아니라 기술에 대한 정복이다. 오늘날 기술은 물리적 경계선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처럼 물리적 경계선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기술 강대국이다. 그나마 한국의 기술은 필수불가결해서 관세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관세가 아무리 높아도 인공 지능 시대에 대비하려면 도입해야만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세는 미래 발전에 방해가 될 뿐이다. 그래서 국제무역 전공의 마이클 톰슨 MIT 경제학과 교수는 백악관 무역정책 자문위원(2017~2020)을 지냈고 본래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지지했었음에도 관세 철폐를 주창하게 됐다.
그는 올해 5월부터 6개월 동안 관세의 실제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세계 주요 현장을 돌아보며 기업 CEO들을 만났고, 공장을 방문했고, 데이터를 수집했다. 그런 후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21세기를 이끄는 나라는 미국도, 중국도 아니고 바로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21세기를 이끄는 기술 초강대국이다. 한국과 같은 대체불가능한 기술 앞에서 관세는 무용지물일 뿐이며 대신 경쟁과 협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무역적자가 아니라 기술부족이다. 결국 그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잘못된 것으로 관세는 즉각 철폐하고 한국과는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백악관에 ‘한국 전략: 관세에서 파트너십으로’라는 제목의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 핵심 내용은 첫째 즉각적 관세 철폐(*한국에 대한 15%의 관세를 즉시 철폐해야 함; *근거: 관세가 미국 기업과 소비자에게 해를 끼치고 있음; *한국은 대체불가능하므로 관세는 의미가 없음), 둘째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한국과 AI, 반도체, 배터리 분야에서 협력 확대; *공동 R&D 센터 설립; *기술 프로그램 확대), 셋째 공급망 안정화(*한국을 핵심 공급망 파트너로 지정; *HBM, 배터리, 디스플레이에서 장기 공급 계약; *중국 의존도 줄이고 한국 의존도 높이기)였다.
미국은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기축통화로 세계의 패권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의 높은 인건비와 시설비 그리고 단기적인 이윤을 내야하는 기업 문화 탓에 공장의 해외 이전으로 자국 내 제조 기술이 퇴보했다. 항공기 및 고급 무기 제조 외의 대부분의 제조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반도체의 경우에도 설계 기술은 있지만 제조 기술은 취약하다. 더구나 미국의 패권 유지에 매우 중요한 조선 기술의 퇴보로 군함이나 잠수함의 MRO(유지, 보수, 정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러므로 트럼프 행정부는 기술이 권력이 된 시대에 미국이 처한 기술 낙후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해야 한다. 겁박으로 기술 강대국 한국을 굴복시킬 수 없다. 그러니 마이클 톰슨 교수가 건의한, 한국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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