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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주필의 시사풀이] 이재명-트럼프의 첫 한미 정상회담의 평가

한양경제 2025-09-03 09:59:26
트럼프 대통령은 우방이든 아니든 다른 나라 정상들과의 회담에서 매우 거칠게 행동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예컨대,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짓거나, 상대를 심하게 몰아붙이거나, 상대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만나주지도 않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트럼프의 스타일에 따라 이재명-트럼프의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도 상당히 난처하거나 굴욕적인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예상됐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의 극우세력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오도하고 한미 정부와 두 정상을 이간질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예컨대,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가짜뉴스를 날조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특검의 특정 목사나 특정 부대 압수수색을 교회에 대한 탄압과 미군부대 압수수색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 이들은 그런 가짜뉴스를 고든 창과 같은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이 미국 정가에 퍼뜨리도록 했다. 그리고 마침내 트럼프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을 불과 3시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도발적인 발언을 게시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숙청 또는 혁명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그런 일을 겪으며 거기서 사업을 할 수 없다. 나는 오늘 백악관에서 새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당신들의 주의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특검 수사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돼, 우리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런 한미 극우세력의 이간질 그리고 미국 일부 장관의 무리한 요구 등에 대해 대처하기 위해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마저도 워싱턴으로 날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비서실장인 수지 와일스(Susie Wiles)를 만나 해명을 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담 중에 이 사안에 대해 “전임 대통령의 내란 시도로 인해 국회가 임명한 특검이 조사를 진행 중인 사안이다. 결코 무질서나 숙청이 아니다.”라고 차분하고 분명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알겠다. 오해였다!”고 반응함으로써 이 사안은 종결됐다. 트럼프의 SNS 돌발 발언은 자기 지지자들인 극우세력의 주장을 자신이 듣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립 서비스인 동시에 한국 대표단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이중의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정식 정보기관들을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보고받고 있을 그가 극우들의 왜곡된 주장을 실제로 믿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쉽게 오해였다고 바로 잡은 것이다. 

이번 회담에 앞서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측 참석자들은 회담에 대해 거의 빈틈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선제적인 국방비 증액안이나 양국 간 산업에서의 협력 방안과 같은 미국의 필요에 부응하는 맞춤형 접근법, 이 대통령이 백악관 방문 때 의전 차량으로 GM 쉐보레 서버번이라는 미제 차 선택,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선물 3종, 하다못해 방명록 사인펜까지 매우 세밀하게 준비한 것이 확인됐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저서 ‘거래의 기술’을 미리 읽고 갈 정도로 이재명 대통령의 치밀한 대비, 회담 내내 유지된 그의 당당하면서도 여유 있고 예의바른 자세, 그리고 그의 뛰어난 순발력 등이 어우러져 회담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미 정상회담에 임한 우리 대표단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는 손자의 병법을 실천한 셈이다. 

게다가, 블룸버그 통신이 “매력 공세(charm offensive)”라고 표현한, 이 대통령의 트럼프 대통령 띄우기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백악관 집무실 인테리어의 황금색 장식,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세, 그리고 트럼프의 평화 추구 노력 등에 대한 칭찬으로 회담이 경직된 대결의 장이 아니라 화기애애한 대화의 장으로 바뀌었다.

특히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문제에 대한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되면 자신은 ‘페이스메이커(pacemaker)’가 되겠다는 언명은 트럼프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이 발언은 정상회담의 의제를 미군 주둔비 문제, 주한 미군의 유연화 문재 등 군사 문제로부터 한반도의 평화 문제로 전환시키는 효과로 발휘했다. 

비공개 회담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매우 이례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에게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전했다. “당신은 위대한 인간이고 지도자다. 한국은 조타석에 있는 당신과 함께 놀라운 미래를 가질 것이다. 난 당신을 위해 언제나 여기에 있다!(You are a great man and leader. Korea has a tremendous future with you at the helm. I am always here for you!)”는 메시지를 담았다.  

강유정 대변인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찬 후 참석자들을 모두 기프트 룸으로 안내해 선물을 고르도록 한 다음에 고른 선물들에 일일이 사인을 해주면서 “김정은을 만나라고 한 지도자는 처음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아주 스마트한 사람이다”고 칭찬했고, 예정보다 길게 진행된 오찬 회의를 아쉬워하며 “대단한 진전, 대단한 사람들, 대단한 협상이었다”고 말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기분 좋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다음 날 국무회의와 또 다른 행사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것을 성과로 말하면서 “그는 좋은 사람이고 좋은 대표자다”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이 회담에 대해 언론도 평론가도 거의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예컨대,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정상과 회담하기 전 위협적인 게시물을 올린 전례가 있었으나 이번 회담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면서 이 회담은 두 지도자가 첫 만남에서 라포르(rapport)를 형성하는 기회가 됐다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즈는 “비굴하지 않은 동맹의 지도자”고, CNN은 “트럼프 앞에서 흔들림 없는 눈빛, 한국 대통령은 무릎 꿇지 않았다”고, BBC는 “이재명은 트럼프의 존중을 이끌어낸 드문 지도자였다”고 모두 성공적인 회담으로 평했다. 한 스위스 언론인도 한국의 대비에 대해 철저한 디테일과 준비, 흔들림 없는 자세로 이루어진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팀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회담에 임했기에 받을 수 있는 평가들이다.


이효성 주필·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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