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주필의 시사풀이] 국제정세 변화와 ‘안미경중’의 문제
2025-09-22
그 결과 고율 관세 정책은 ‘관세 전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트럼프는 고율 관세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속에서 진행되는 ‘관세 전쟁’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관세 전쟁은 미국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관세 전쟁’은 미국이 견제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에는 별 영향도 미치지 못하면서 오히려 미국의 동맹국이나 우방국만 소외시키거나 반발하게 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우방국들로부터 미국이 소외되고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최우방국 캐나다는 분노하고 있고, 유럽연합(EU)나 한국이나 일본은 난처해하고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해 절실한 인도는 모디 총리가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하는 등 오히려 중국과 더 가까워지고 있다.
느슨하던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는 결속을 다지고 있다. 게다가 미국 기업들이 줄줄이 가격을 인상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인상된 관세는 소비자 물가에 전가되어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는 세금이 된다. 그로 인해 트럼프 자신의 지지율이 오히려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과도한 고율 관세로 관세 전쟁을 촉발한 트럼프와 미국이 배워야 할 관세 전쟁의 교훈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이외의 나라들, 특히 미국의 동맹국이나 우방국들은 미국이 촉발한 관세 전쟁에서 별도의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교훈은 대체로 미국에게 불리한 것일 수밖에 없다. 미국 이외의 나라들이 배우게 될 교훈들은 미국에게는 불리한 것들이라는 사실도 트럼프와 미국이 새겨야 할 관세 전쟁의 교훈에 추가돼야 할 항목이다.
첫째, 전후 세계 무역질서를 지배했던 관세및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는 자유 무역을 권고했지만 강제한 것은 아니어서 보호 무역 등으로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래서 한국이나 대만으로 대표되는 산업화 후발주자들이 부상하자 선진국들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자유 무역을 강제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1997년의 아시아 경제 위기와 그로 인한 한국의 외환 위기에서 WTO 체제는 매우 가혹했다. 다행히 한국은 외환위기를 4년 만에 벗어났으나 그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많은 우량기업들 조차 도산으로 사라졌고, 많은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많은 이들이 빚을 지게 됐다. 우리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한 이래로 자유무역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WTO 체제가 금하는 보조금 지급, 인터넷 개방 불허 등의 국가 개입 행위 속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을 누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중국은 미국에 이은 세계 두 번째 경제 대국이 되었고, 미국은 중국 견제에 나서게 됐다.
트럼프에 의한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서 WTO 체제가 실질적으로 무너지게 된 까닭이다. 그 여파로 이제 산업화의 후발 주자도 무역 정책에서 국가 개입의 여지가 되레 커지게 됐다. 한국은 이 기회를 잘 살려 중요하나 우리가 부족한 산업 분야는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강대국은 국익 앞에서는 동맹도 무시하고 동맹국이나 경제 파트너도 견제와 보복과 강탈의 대상으로 삼는다. 중국은 한국의 미군기지 내에 싸드 허용에 따른 보복으로 한한령을 발했다. 미국은 관세 전쟁으로 오히려 동맹국과 우방국에게 더 가혹하게 굴고 있다. 특히, 한국과 일본에는 감당하기도 어려운 과도한 현금 투자를 선불로 하라는 도를 넘는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고 있다. 동맹국을 경제 협력의 파트너로 보고 상생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돈과 기술을 빼앗을 수 있는 호구로 보고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한국은 일본과는 달리 이러한 미국의 과도한 요구와 압박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한국의 자세에 놀라면서 속으로 은근히 응원하고 있다. 한국이 미국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것은 배짱이 커서가 아니라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제조업의 부활을 노리는 미국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기술을 가진 기술 강대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보다 해군력을 강화하고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조선 능력으로는 새로운 군함의 건조는커녕 기존 군함의 유지, 보수, 정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다. 현재 세계에서 이런 미국을 도울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게다가 한국은 AI 시대에 필수적인 반도체, 2차 전지, 전력과 관련된 기술과 생산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기에 미국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AI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한국을 함부로 할 수 없다. 적어도 이들 기술력에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강국이다.
다섯째, 미국과 강대국 중심의 무역과 외교의 다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의 무역과 외교는 주축은 미국이었다. 여기에 나머지 대부분은 인접국인 중국, EU, 일본에 의존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캐나다, 호주,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유럽, 중남미 등으로 과감한 다변화가 필요하다. 2021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공식적으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했지만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한국의 기술력과 제품의 우수성을 잘 모른다. 따라서 외교부, 산자부, 문화부 및 산하 관련 기관의 인력을 늘려서 대외 관계를 강화하고 한국의 기술, 제품, 문화를 더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관세 전쟁으로 인해 지금 세계는 거의 정글로 변하고 있다.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동맹도 UN이나 WTO와 같은 국제기구도 아니다.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기술력을 더욱 강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과감한 혁신, R&D,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자주국방을 강화하고 미국에 우리의 안보를 의탁해온 의존성을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이미 우리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자세 전환과 실천이 남아 있을 뿐이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