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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화의 포토에세이] 사랑 이야기의 고향, 남원을 찾다

한양경제 2025-10-31 16:01:23
광한루 전경. 이일화

서울을 떠나면 꼭 방문하고 싶은 도시였던 전남 남원에 발을 디뎠다. 어딘가 모를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서려 있는 듯한, 그 풋풋한 연인의 사랑 이야기의 고향이 남원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사랑을 동경하며 읽었던 춘향전, 실제 사랑 이야기의 고향이 남원이라니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그동안 세상살이에 너무 바빴으니, 이제 이 여유를 끌어안을 이유라도 되는 듯, 남원을 찾았다. 

춘향전이야 원래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지고,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으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리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급사회였던 조선시대, 사랑에 빠졌던 사도의 아들과 기녀의 딸. 당시로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고 하니.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비록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비극이지만, 춘향 이야기는 사실이고 희극이다.  

남원은 고도로 아름답다. 마치 내 고향 안동을 오는 느낌이랄까? 아주 비슷하다. 아주 오래된 도시가 가진 아늑한 느낌. 그런데 전혀 다른 느낌이 있다. 서울에서 아침에 출발한 탓으로 늦었지만, 유명한 남원 추어탕 한 그릇으로 허기를 지운다. 서울에서 먹던 추어탕과는 전혀 다른 마치 고향에서 먹던 아침 조반의 국 맛이 난다. 바로 우리가 오랫동안 몸에 익숙한 어머니가 내주던 손길 같은 이밥과 국, 딱 그 맛이다.  

광한루 뒤편의 공덕비군. 남원 각지에 산재했던 관찰사, 부사, 어사의 공덕비를 한곳에 모아 놓았다. 이일화

남원에 오면 반드시 들르고 싶어 했던 광한루를 먼저 들를 수밖에 없다. 그냥 첫 번째 느낌! 내 고향과는 달랐다. 마치 한성의 경복궁의 작은 모형을 보는 듯했다. 여기는 관청이라기보다는 위락장소였다. 분명 옛 관청의 사옥이 보일 텐데, 관청 대신 누각만 깊이 연못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광한루를 벗어나면 주변의 한옥 호텔들 외에 뚜렷이 들러볼 장소가 없었다. 이것이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문화였다. 

고향 경북 안동에서는 서원들이 즐비했기에 늘 도서들에 익숙했다. 지금이야 다 대학에 기증하고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옛 고서들이 늘 가득했다. 종택이었던 안동댐 입구의 임청각에 사람들이 모이면, 갓을 쓴 선비들의 모습이 시끌벅적했지만, 모두가 떠나고 나면, 탑골에도 한여름 연못을 끼고 앉은 누각에 고시 공부하는 선배들이 조용히 책을 보는 탓에 떠들 수조차 없었다. 누각과 대청마루는 저렇게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곳이구나 하고 늘 가슴에 서려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긴 그때는 어린 마음에 공부하지 않으면 죽는 줄 알았다. 

광한루를 들어서자마자 당장 들어오는 느낌! 경복궁 뒤의 경회루처럼 아름다움의 뒤로 스며드는 애틋함. 이게 뭐지? 누각에 대한 존경심과 춘향에 대한 사랑 이야기는 뒤로 제쳐지고, 연회에 빠져 시간을 보내던 탐관오리들의 모습만 연신 눈에 연상되는 건 왜일까? 분명 훌륭한 부사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 터인데, 훌륭한 분들이 많았을 테고. 황희 정승이 이곳을 거쳐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광한루 후면의 호남제일루라는 현판이 보인다. 이일화

다행히 부임한 관찰사, 부사, 어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석비 군을 찾았다. 누각 뒤쪽 음지에 나란히 서 있다. 이런 공덕비들을 한데 모았다면, 앞에 두는 것이 맞는데. 이곳 정서 탓일까? 애틋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춘향을 기리기 위한 이곳 역사 이야기를 상품화시킨 탓일까? 광한루를 돌아보며, 춘향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오히려 지나간 탐관오리들의 행태에 대한 화가 치민다.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라는 누각의 간판이 아름답다거나 존경심보다는 오히려 조금 역겨움이 오른다. 이런 과거 역사 이야기를 관료들의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옳거늘.  

춘향 이야기가 그냥 이야기라는 이야기도 있고, 역사적 사실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내가 아는 건 허구가 아닌 역사적 한 사실이라는 것. 어느 분의 연구에서는 족보도 찾아냈다는 이야기도 본 적이 있다. 아마 내 고향 안동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당시였다면 아마 집에서 도망쳐야 했으리라. 춘향 이야기도 똑같은 상황이었으리라. 신분을 철폐하고, 각고의 인내로 사랑을 얻은 아름다우면서도 극도로 강인한 여성!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가 얼마나 나쁜 제도였는지, 지금 이 풍요로운 세상을 사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과연 느껴질까? 그리고 탐관오리들이 얼마나 나쁜 행태인지를. 한 아름드리로 서 있는 왕 버드나무는 그때 그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겠지. 암행어사 출도요! 이도령이 암행어사가 되어 연회에 참석해 일필휘지로 던져 놓은 한시 하나! 너무도 명문이어서일까? 어릴 적 대중소설처럼 읽혔던 춘향전에서 지금까지 외우는 한시가 또렷하게 외워진다.
 
금준미주 천인혈이요(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 만성고라(玉盤佳肴萬姓膏).
촉루낙시 민루락이니(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 원성고라(歌聲高處怨聲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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