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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27> 부동산 규제와 헨리 조지 사상

한양경제 2025-11-10 11:15:06
“아버지, 저도 이제 집을 사고 싶은데… 은행에서 대출이 안 된대요.”

“나도 도와주고 싶어. 그런데 이 집 세금이 또 올랐단다.” 

저녁 식탁에서 들려온 이 짧은 대화. 젊은 세대의 좌절과 중장년의 불안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누구에게는 집이 ‘출발선’이고, 누군가에게는 ‘짐’이 된 이 시대. 우리의 부동산 시장은 단순한 자산시장이 아니라, 세대의 감정과 삶의 무게가 얽힌 거대한 무대다. 그 무대 위로 정부의 규제정책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규제의 뿌리에는 오래된 사상이 숨 쉬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는 산업화로 발전한 도시 문명 속에서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진보와 빈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진보가 심화될수록, 토지의 소유가 집중되고, 그 위의 삶은 더 고단해진다.” 그에게 토지는 인간이 만든 재산이 아니라, 본래 자연이 모든 사람에게 준 공동의 터전이었다. 따라서 스스로 일하지 않고, 단지 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익을 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런 생각에서 그는 토지에서 생겨나는 불로소득, 즉 ‘지대(地代)’를 사회가 거둬들이는 ‘단일세(Single Tax)’ 제도를 제안했다. “땅은 개인이 소유하되, 그 가치의 상승분은 사회 전체의 것이다.” 이것이 헨리 조지 사상의 요체였다. 이 사상은 시대를 넘어 울림을 남겼다. 토지는 곧 공동체의 기반이라는 인식, 그리고 불로소득을 환수해 공공의 이익으로 돌려야 한다는 신념은 오늘날 우리의 부동산 정책에도 깊이 스며있다. 

종합부동산세,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분양가 상한제 등도 헨리 조지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제도라 할 수 있다. 올해 들어 정부는 ‘6·27 대책’과 ‘10·15 대책’을 통해 초강력 부동산 수요 규제책을 내놨다. 다주택자에 대한 대출 제한, 종합부동산세 강화, 토지거래허가제 확대 등이다. 핵심 메시지는 분명했다.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거주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 철학적 기저에는 분명 헨리 조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불로소득의 환수, 시장의 안정, 그리고 정의의 회복. 

단기적으로 부동산 정책은 성과를 냈다. 투기 수요가 억제되고, 거래량이 줄며 가격 상승세가 완화됐다. 하지만 시장은 곧 다른 반작용을 보이기 시작했다. 규제의 칼날은 예리했지만 그만큼 시장은 얼어붙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이 낮아지면서 공급은 위축되고, 거래 절벽이 일상화됐다. 수요는 통제되었으나 필요한 집은 여전히 부족했다. 부동산 문제 해결의 방향은 길을 잃은 듯이 보이고, 시장의 불확실성과 불신은 커지고 있다.  

“내 월급으론 전세 보증금도 못 모으겠어요.” 청년의 절규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그것은 ‘기회의 상실’에 대한 체념이다. 대출 규제는 투기 억제에는 효과적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출발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청년층에게는 약간의 예외를 두긴 했지만 그것 역시 현실감이 부족한 조치다. 중산층의 불안도 커졌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세금이 벌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의 피로감은 조세 불만으로 나타나고, 청년의 좌절은 세대 갈등으로 번진다. 헨리 조지가 말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조치가 현실에서는 과도한 사익 침해와 부담으로 비칠 위험이 있다. 게다가 규제지역을 피해 외곽으로 수요가 이동하면서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지역 간 격차는 더 커지고 있다. 결국 수요 규제만으로는 시장의 복잡한 흐름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제 부동산 정책은 자유 시장경제의 근본 원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분배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균형 잡힌 방안을 어렵지만 다각적으로 모색해야 할 때다. 

첫째, 공급 확대와 공공성의 병행이다. 공공임대·도심 고밀개발·공공주택 리츠 등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서도 서민의 주거 안정을 돕는 방법이다.

둘째, 규제와 조세의 합리화다. 투기 목적 부동산에는 강력한 규제와 과세가 필요하지만 1주택자와 청년층의 부담은 크게 완화해야 한다. 공익을 내세운 규제와 세금도 시장경제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셋째, 임대 시장의 신뢰 회복이다. 장기 임대주택 확대와 임대료 상한제는 헨리 조지의 ‘공유의 정의’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이다.

넷째, 지역의 균형발전이다. 모든 토지 가치가 수도권에 쏠린 현실에서 지역의 인프라와 일자리에 대한 투자는 불평등을 완화하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 

헨리 조지는 말했다. “토지는 인류 모두의 것이다. 그 위에 세운 문명은 누구의 독점물이어서는 안 된다.” 그의 목소리는 한 세기를 넘어 지금의 한국에도 울린다. 우리는 불로소득을 억제하며 정의를 세우려 노력해왔지만 정의의 철학만으로는 삶이 버티지 못하고, 사익추구의 가치만으로는 사회가 올바로 서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에서 경험해 왔다. 

부동산 정책은 정의와 현실의 균형 위에서 다시 설 때다. 헨리 조지가 꿈꾸던 “진보와 빈곤의 간극이 좁혀진 사회”는 아마도 집값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청년이 희망을, 중산층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닐까?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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