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논술] <22>보호무역과 게임이론
2025-10-06
노벨상 수상자들의 메시지는 간결하고도 명확하다. 경제의 역동성과 성장은 단순히 자본을 쌓아 올리는 노동의 문제가 아니며, 낡은 관습과 기술을 부수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혁신적인 기업가의 영혼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이 혁신을 수반한 창조는 반드시 ‘파괴’라는 아픔을 동반하게 된다. 소설 ‘데미안’에서 ‘알이 깨지는 고통’을 참아내야 새가 하늘을 비상할 수 있듯이.
필름 카메라의 아름다운 추억을 스마트폰의 냉정한 효율이 덮어쓰듯, 혁신은 기존의 안락한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부와 가능성을 창출한다. 그들은 이 역동성이 멈추는 순간, 경제는 활력을 잃고 쇠락의 길을 걷는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노벨상의 수상 소식은 성장의 엔진이 식어가는 한국 경제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라”는 준엄한 명령처럼 들려온다.
그러나 이 위대한 혁신 이론에도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창조적 파괴’가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 뒤에는, ‘파괴’를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수많은 개인들의 눈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대규모의 실업과 산업의 붕괴라는 거대한 격랑을 일으킨다. 창조적 파괴가 낳는 고통과 충격이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집중될 때, 혁신은 환영받지 못하고 결국 미래를 향한 사회 전체의 의지를 꺾는 저항으로 되돌아온다.
더욱 가슴 아픈 역설은 혁신을 통해 탄생한 승자, 즉 독점 기업이 다음 혁신의 발목을 잡는 ‘배신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시장을 지배한 거대 기업들은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오히려 막대한 자본력과 영향력을 이용해 새로운 도전자들의 길을 막아선다. 그들의 안락한 울타리는 창조적 파괴의 불꽃이 번지는 것을 가로막는 단단한 방파제가 되어, 시장의 역동성을 질식시킨다. 슘페터 이론의 핵심인 ‘파괴’가 독점의 장벽 앞에서 멈춰 설 때, 경제는 정체되고 희망은 사라진다.
지금의 한국 경제는 슘페터가 경고했던 정체의 길목에 서 있다. 우리는 기적 같은 성공 신화를 썼지만, 그 신화에 취해 혁신의 춤을 멈춘 지 오래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날카로운 진단처럼 한국 경제의 문제는 '파괴 없는 창조'라는 역설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거대한 재벌 중심 경제 구조는 이미 독점의 벽을 높이 쌓았다. 기존 대기업들은 새로운 도전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그들의 성공은 다음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실패에 대해 낙인찍고 재도전을 허락하지 않는 냉혹한 문화와 제도는 기업가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영혼들이 낡은 규제와 기득권의 장벽 앞에서 좌절할 때, 우리는 미래의 성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경제적 영혼을 다시 깨우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넘어선 용기가 필요하다. 첫째, '파괴의 고통'을 껴안는 따뜻한 연대가 필요하다. 낡은 기업과 산업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파괴’를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고통을 개인에게만 전가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실업의 불안을 해소하고, 대규모 직업 전환 교육을 통해 이들을 새로운 혁신 산업의 주역으로 다시 세우는 국가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둘째, ‘독점의 울타리’를 허무는 용감한 경쟁이 필요하다. 재벌과 대기업의 독과점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된다. 반독점법을 강력하게 집행해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복원해야 한다. 규제는 혁신을 가로막는 족쇄가 아니라, 혁신을 지지하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허용하고 최소한의 안전만 규제하는 '네거티브 규제'로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닫힌 문’을 여는 개방과 포용이 필요하다. 인구 절벽 앞에서 혁신의 불씨가 꺼질 위기에 처한 한국은, 이제 세계의 지식과 인재를 끌어안아야 한다. 국경을 넘어 우수한 기술 인력과 혁신적인 기업가들이 한국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낡은 것을 부수는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창조의 희망을 향해 나아갈 때,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혁신의 새벽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멈춰버린 심장에 다시 한 번 뜨거운 도전의 피가 돌도록 이제 모두가 용기를 내야 할 때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혁신’을 축복하는 동시에, 그 혁신이 불러오는 ‘파괴’를 관리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신호탄이다.
박병윤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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