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전란의 피폐와 혼란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위안이라도 얻고 싶었던 대중의 욕구와 보상적 심리 기제의 작용이었다. 고단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고 마음의 고통을 해소하고자 했던 시대 정서가 서구풍의 음악 장르에 취한 것이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으로 전쟁의 포성이 멎자 가요계에는 외국과 이국(異國)의 선율이 밀물처럼 스며들었다. 우선 미국 대중문화의 유입이 눈에 띄었다.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아리조나 카우보이’ ‘샌프란시스코’ 등 제목부터 영어로 된 노래가 유행한 것이다. 서구적인 감각을 선호하는 대중심리의 반영이었다. 가요계의 이국취향은 홍콩과 인도, 페르시아 등 아시아권으로 확산됐다.
아직은 미국문화에 대한 이질감이 앞섰던 한국인의 정서가 일제강점기 말경에도 유행한 적이 있는 아시아적 풍조에 마음이 더 다가선 것이다. ‘홍콩 아가씨’ ‘인도의 향불’ ‘페르샤 왕자’ 등이 대표적인 곡들이다. 따지고 보면 가수 현인의 독특한 발성과 특이한 전주가 떠오르는 ‘신라의 달밤’이 해방 후 첫 이국 성향의 노래였다. ‘신라의 달밤’은 원곡이 일제강점기 말경에 이미 유행했다 얘기도 있다.
악극단 공연에서 이국 풍경을 묘사했던 ‘인도의 달밤’이라는 노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해방 후 개사(改詞)를 했을지도 모르는 가요의 전체 분위기는 불교적 색채에다 회고적인 정서를 지녔지만, 전주곡의 멜로디가 강렬한 아라비아의 선율을 담고 있다. ‘신라의 달밤’은 그렇게 해방공간의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탄생한 낭만 가요이자 이색 트로트곡으로 남아있다.
‘공작새 날개를 휘감는 염불 소리, 간디스강 푸른 물에 찰랑거린다...’
현인이 부른 ‘인도의 향불’은 그가 앞서 발표한 히트곡 ‘신라의 달밤’과 분위기가 상당히 흡사하다. 전쟁 중이라는 당대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 같은 이국 정취의 노래가 나온 것은 일상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자 했던 대중의 욕망을 반영한 것이었다. 현인은 또 하나의 이색적인 가요를 멋있게 소화하며 음악적인 역량을 과시했다.
‘별들이 소근대는 홍콩의 밤거리, 나는야 꿈을 꾸는 꽃 파는 아가씨...’
금사향이 부른 ‘홍콩 아가씨’에서 홍콩은 그야말로 도시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이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홍콩은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첨단 도시 홍콩은 자유경제와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1997년 홍콩이 사회주의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의 아름다움’은 빛을 잃었다.
‘신라의 달밤’ 유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중가요의 이국정서는 일제강점기에 비롯됐다. 만주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유랑가요의 배경이 인도와 중동으로 확장된 것이다.
‘페르샤 왕자’(1954)는 페르시아 왕자와 아라비아 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이국적인 화음과 경쾌한 이슬람풍의 선율이 사뭇 이색적이다. 게다가 점을 치는 왕자와 마법사 공주가 등장하는 노랫말을 통해 전설적인 신비감을 더하고 있다.
이국 정취의 노래들은 전쟁 전후의 피폐한 대중의 가슴에 일종의 도피와 위로의 공간을 제공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김영철 대중가요평론가는 “미국문화에 대한 동경과 서구음악 지향이라는 시대정서의 반영이기는 하지만, 한국가요의 다양성과 개방성 확대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가요사에서의 적잖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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