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버렸나요’로 시작하는 ‘생일 없는 소년’은 어느 고아의 수기(手記)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면서 노래로 거듭난 것이다. 가수 김용만은 전란의 후유증 속에 버려진 지향없는 고아들의 처연한 삶을 대변했다. 하지만 비탄조라는 이유로 방송금지 조치를 당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비둘기가 울던 그 밤에 눈보라가 치던 그 밤에, 어린 몸 갈 곳 없어 낯선 거리 헤매이네...’
백설희가 부른 ‘가는 봄 오는 봄’은 고아들의 눈물과 탄식을 담고 있다. 박시춘의 곡과 반야월의 노랫말도 애잔하거니와 백설희의 목소리에도 비감이 어려있다. 현대사의 격랑에 휩쓸린 ‘고아’라는 애달픈 가족사의 넋두리가 전란의 상흔이 남아있던 대중의 쓰린 공감을 자아낸 것이다. ‘생일 없는 소년’과 ‘가는 봄 오는 봄’은 전쟁 후 우리 사회가 직면했던 아린 통증이자 연민의 정이었다.
1절과 2절 모두 ‘아~ 우리는 외로운 형제, 길 잃은 기러기’로 끝나는 ‘기러기 아빠’의 노랫말은 1절에서는 아빠의 부재 상황을 2절에서는 엄마 없이 살아가는 어린 형제의 신세를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기러기 아빠’는 1960년대 중후반 산업화와 도시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고아들의 신산한 삶을 들여다본 것이다. 아직도 다 아물지 않았던 전쟁이 남긴 사회적 생채기를 되돌아본 것이기도 하다.
‘기러기 아빠’는 1969년 전파를 탄 같은 제목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한국 사회의 국제적 이산(離散)이 잉태한 새로운 이별가이기도 했다. 그것은 격동의 현대사에 휩쓸려 다시 가족이 해체되는 아픔과 그리움을 보듬고 살아온 한국인의 울먹임이었다. 1960년대는 그랬다. 월남전쟁과 중동건설 그리고 해외유학 붐으로 한국 사회는 또다른 국제적 이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미자의 ‘기러기 아빠’ 또한 방송금지와 함께 음반제작과 판매까지 금지당하는 좌절을 겪었다. 근대화의 분위기를 저해하는 자학과 비탄의 정조가 원인이었다. 그로부터 또 세월이 흘러 6.25 전쟁의 휴전 30주년이 되던 해에 나온 설운도의 히트곡 ‘잃어버린 30년’은 사실상 이산가요의 종점에 해당하는 노래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그리웠던 삼십년 세월’이었다.
‘우리 형제 이제라도 다시 만나서, 못다 한 정 나누는데, 어머니 아버지 그 어디에 계십니까’ 목메이게 불러보는 것이다. ‘잃어버린 30년’은 상봉의 기쁨이면서 상실의 아픔이다. 노래의 제목만으로도 전란의 후유증을 앓으며 곡절많은 삶을 이어온 한국인들의 통점과 감성을 건드린다. 무명가수 설운도를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 노래는 특별한 시절인연이 작용했다.
1983년 6월 30일 KBS가 휴전협정 30주년을 맞아 1천만 이산가족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추진한 ‘이산가족찾기 특별 생방송’ 덕분이었다. 이산가족의 눈물겨운 상봉 장면에 설운도의 호소력 있는 절창이 어우러지면서 생방송의 감동 또한 한층 더 극대화되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30년’으로부터 다시 ‘잃어버린 40년’. 이제는 이산가족마저 하나 둘 떠나고 없다. 이산의 아픔도 무정한 세월 속에 사위어간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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