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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9> 7월, 무더위의 계절

칠월은 혹서의 철 염소뿔도 녹는다나
태양은 작열하고 복사열 넘쳐나니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범벅이 된다데…
한양경제 2024-07-01 17:32:43
서울 개포동에서 자라는 복숭아 나무에서 나뭇잎들에 가려진 채 복숭아 열매가 아직은 초록색을 띠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이효성 

7월은 한여름이다. 한여름은 열매가 부쩍 자라는 철이다. ‘여름’이라는 말 자체가 열매가 열리는 철이라는 뜻이다. 7월에 일부 과실수들에서는 봄에 꽃들을 피웠던 곳에 짙은 녹색의 둥근 열매들이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매실, 살구, 자두, 앵두, 버찌, 보리수와 같은 작은 열매들은 6월에 익는 것도 있지만, 복숭아, 감, 모과, 사과, 배 등 큰 열매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작은 열매들도 대체로 늦여름이나 가을에 익기에 초여름이나 한여름에 무럭무럭 자라야 한다. 열매에게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그래서 여름의 열매들은 푸른색으로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시거나 떫고 딱딱하다. 동물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열매들이 익으면 대체로 노란색이나 붉은색으로 변색하여 탐스럽고 눈에 잘 띄며 단맛을 낸다. 이제는 동물에게 먹히기 위해서다. 가을에 열매가 익으면, 동물은 열매로 배를 채우고 열매는 동물을 이용해 씨앗을 퍼뜨린다.

하지를 기점으로 낮이 조금씩 짧아지지만 7월 동안에는 여전히 낮이 밤보다는 훨씬 더 길다. 그래서 뙤약볕이 내리쬐고 복사열은 쌓여가기에 기온은 점점 더 올라간다. 게다가 7월 초순과 중순에는 다습한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오르락내리락하여 습하기까지 하다. 장마가 끝나면 한반도는 완전히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권에 들기에 더욱더 습해지는 데다 그동안 쌓여온 복사열이 작용하여 날씨는 점점 더 무더워진다. 이 무더위 속에서 매미들이 떼로 등장하여 짝을 찾으려고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한다. 7월은 갈수록 무더워져 월말에 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이 무렵에는 밤에도 열기가 식지 않아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이는 잠도 자기 힘든 열대야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24절기에는 7월의 초순 어간에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小暑)’ 절기와 하순 초에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다는 ‘대서(大暑)’ 절기가 있다.

이처럼 7월은 끈끈하고 후덥지근한 무더위의 시절이다. 특히 7월 하순부터 8월 초순까지의 기간이 연중 가장 무덥고 불쾌지수 또한 가장 높은 철이다. 이때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온몸에 땀이 배어 끈적끈적하고 등줄기에서는 땀이 줄줄 흐른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땀범벅이 된다. 이 무렵 한낮의 뙤약볕 아래에서 일이라도 하게 되면 숨이 턱턱 막힌다. 그 더위가 오죽했으면 ‘염소뿔이 녹는다’고까지 했겠는가! ‘찜통더위’, ‘불볕더위’, ‘폭염(暴炎)’, ‘혹서(酷暑)’, ‘고열(苦熱)’ 등의 표현은 이때의 무더위를 일컫는 말이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특히 양반들은, 예절을 지킨다고 정장을 하고 갓을 썼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래서 무더위 속에 “의관을 정제하고 앉으니 발광하여 소리 지르고 싶다”고 한 말이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 찜통더위를 실내에서든 실외에서든 견디기는 쉽지 않다. 그 속에서는 무엇을 하든 능률도 오르지 않는다. 그때는 그저 모정(茅亭)이나 바람 잘 통하는 나무그늘을 찾아 낮잠이나 한숨 늘어지게 자는 게 상책이다. 아니면 아예 일상을 버리고 바닷가든 계곡이든 시원한 곳으로 찾아들어가 물장구도 치고 매미소리나 들을 일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7월에, 특히 하순에, 피서여행을 떠난다. 이 무렵 전국 방방곡곡의 유명 피서지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냉방시설이 없는 옛적에는 이 찜통더위를 참기가 더욱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도 유두절(流頭節)로 불린 음력 유월 보름날(2024년의 경우 양력 7월20일) 지인들끼리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서 멱을 감고 음식을 장만하여 시원한 계곡을 찾아 놀았다. 그 놀이를 유두연(流頭宴)이라고 불렀는데 유두연은 오늘날 피서행락의 원조인 셈이다.

이런 한여름의 무더위를 달래주는 것이 있다. 하나는 소낙비다. 무더운 한여름 낮, 특히 오후에, 천둥번개와 함께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먹구름이 몰려와 굵은 빗줄기를 쏟아낸다. 이때 천둥번개와 갑작스런 어둠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데다 시원한 소낙비로 기온도 낮아진다. 기껏해야 한두 시간 정도지만 이때만큼은 무더위가 가신다. 무더위를 달래주는 다른 하나는 햇밀로 해먹는 밀가루 음식이다. 밀은 6월 중순 경에 수확하는데 탈곡과 정곡을 거치면 7월 중순 경에 먹을 수 있게 된다. 이 햇밀로 한 밀가루 음식은 다 맛이 좋아 더위를 잊게 한다. 특히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은 국수나 수제비는 더위에 지친 미각을 자극한다. 그런데 이제 햇밀가루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아쉽게도, 오늘날의 밀가루는 거의 수입한 것이라서 7월의 밀가루 음식에서도 햇밀가루의 신선한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젊은 세대에게 라면과 빵은 거의 주식이 된 데다 우리의 대부분 간식은 밀가루로 만들어지기에 밀가루 소비량은 많은 데 비해 국내 자급률은 1%도 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나 국내 재배는 채산성이 없어서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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