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why] “‘배민’의 ‘배신’이냐”…‘이유 있는’ 아우성
2024-07-11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사건을 계속 심리할지를 결정하는 대법원의 첫 판단 시한이 내달 초로 바짝 다가왔습니다. 지난 5월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단과 달리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천808억원이라는 거액의 재산을 분할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놨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 회장으로서는 ‘심리불속행 기각’이라는 관문을 먼저 뛰어넘어야 할 상황입니다. 최 회장 측은 “대법원 재판부가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원심을 뒤집을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치는 분위기입니다. 그만큼 항소심 판단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다만 항소심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본 탓에 대법원에 조목조목 반박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지난 8월 최 회장 측은 대법원에 A4용지 약 500쪽 분량에 이르는 상고이유서를 제출했습니다.
■쟁점1: ‘선경 300억’ 메모 증거력 있나
항소심 판단의 핵심은 △노 관장의 선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에 유입돼 태평양증권 인수에 사용되는 등 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점입니다. 또 △노태우 비자금이 ‘혼화’한 만큼 최 회장의 SK 지분은 노 관장과의 공동재산이고, △노 전 대통령이 이동통신사업 진출에 ‘무형적 기여’를 했다는 겁니다.
재판부 판단의 결정적인 단서는 항소심에서 튀어나온 ‘선경 300억’ 메모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썼다는 메모는 1심과 2심이 다른 결론에 이르게 한 핵심 근거였습니다.
하지만 ‘선경 300억’ 메모의 증거력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서증 조사’ 절차가 생략돼 있어 논란을 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증 조사는 재판부에 증거로 세출된 서류 중 증거로 채택된 것을 법정에서 공개하고 입증 취지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절차입니다.
형사소송과 달리 이혼소송 등 민사소송의 경우 ‘자유심증주의’에 입각해 재판부 심증에 따라 판단한다는 점에서 서증 절차는 생략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변론 전체 취지나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해 심증으로 사실 주장이 진실한지 판단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거액의 재산분할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단서 역할을 하는 단순 메모에 대해 증거력을 다투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상당합니다.
항소심 과정에서 메모에 등장하는 ‘맡겨둔 돈’을 받은 인물들에 대한 확인 절차도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노 관장 측이나 재판부는 노태우 비자금의 전달 자체를 사실로 인식하면서도 SK그룹 측에 전달한 주체나 소속을 상세히 밝히지 못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특히 300억원의 전달 시점도 대략 1991년 정도로 드러났을 뿐 구체적인 시기도 특정되지 못했습니다. 비자금 수사 당시 추적을 피했다면 현금 전달의 가능성이 큰데, 5만원권도 없던 당시 300억원은 트럭 2대 분량이나 됩니다. 전달 과정에서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전달자나 그 과정을 명확히 하지 못하니 ‘실체 없는 300억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재판부 심증을 넓게 보는 민사소송이라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증거 자료에 대한 검증 절차가 생략된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 “결국 대법원에서 해당 메모의 증거력을 검증하는 절차상 하자에 대해 따져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쟁점2: ‘비자금 300억원’을 사돈에 왜 주나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등 SK 측에 전달된 목적도 명쾌하지 못해 의혹으로 남습니다. 전달 자체를 인정하더라도 그 목적에 따라 해석은 달리 나올 수 있어 전달 목적은 중요한 쟁점입니다.
우선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선의’로 증여를 했다는 점을 가정해 추론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선의라고 하더라도 최 선대회장 개인재산으로 봐야 하고, 결국 1994년 최 선대회장이 최 회장에게 줬다는 ‘대한텔레콤 인수 자금’은 최 선대회장 개인 것이 됩니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회장에게 돈을 줄 당시 대한텔레콤 인수 자금으로 써달라고 목적을 밝히지 않았다면, 최 선대회장의 개인자산이 최 회장에 전달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 자신의 비자금을 은닉하기 위한 목적으로 최 선대회장에게 보관해달라고 한 경우를 가정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노태우 일가는 해당 금액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채권만 가질 수 있어, 결국 해당 자금을 근거로 1조원대 재산분할에 이르는 결론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것이 노 관장 측이 ‘선경 300억’ 메모와 함께 제출한 약속어음입니다. 노 관장 측은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이 발행했다는 약속어음 50억원짜리 6장의 사본 일부를 재판부에 제출했습니다. 현직 대통령과 기업인 사돈과의 300억원 수수 과정에서 간접 근거로 사용됐지만, 이 역시도 논리적으로 따져 봐야 할 문제라는 신중론이 있습니다.
약속어음은 증여와 달리 ‘약속한 금액’을 차후에 주고받겠다는 일종의 채권·채무 계약 취지로 작성됩니다. 만약 통상적으로 빌려주거나 투자를 목적으로 준 자금이라면 약속어음이 아닌 차용증이나 투자금 반환 계약서 등을 작성하는 게 상식적입니다.
약속어음의 발행 과정에 대해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노태우 정부 당시 비자금 조성·관리를 담당한 인사로부터 최 선대회장 측이 ‘300억원 분담’ 요구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에 최 선대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진의를 알아보기 위해 청와대 방문 시 1억원짜리 수표 30억원을 응접실 두고 나왔고,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이를 돌려주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다시 청와대의 300억원 요구가 이어지자, 최 선대회장은 “대통령 퇴임 후 활동자금이 필요할 때 300억원을 꼭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청와대 측 ‘증표’ 요구에 계열사를 통해 약속어음을 전달했다는 겁니다.
이는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 수수 시점을 알려진 당시 SK그룹 경영기획실장을 지낸 손길승 명예회장의 진술서와 맥을 같이 합니다. 손 명예회장은 진술서를 통해 “딸(노 관장)을 시집보낸 사돈집(SK그룹)에 300억원이라는 거액을 줄 리도 없고 (거액이) 회사에 들어오면 아무리 자금 세탁을 하더라도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일”이라며 “실체가 없는 약속어음이어서 선경건설이 300억원을 부채로 인식하지도 않았고 회계처리도 한 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300억원이 전달됐다는 1991년보다 1년 이상 차이가 나는 1992년 12월 차용증도 아닌 약속어음이 작성됐다는 점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지점입니다.
■쟁점3: ‘8.7조’ 대기업이 말기 권력 돈 ‘300억’을 왜 받나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비율을 나눈 항소심 재판부 결정도 논란의 여지가 많이 남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최 선대회장으로부터 약 2억8천만을 증여받아 대한텔레콤(현 SK C&C) 주식을 취득한 1994년부터 1998년 최 선대회장 별세 시점, 이후 2009년 SK C&C 상장 시 가치 증가분을 비교하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업 성장에 기여한 최 선대회장의 기여분을 12.5배로, 최 회장은 355배로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논리 바탕 아래 최 회장에 내조한 노 관장의 재산 기여분을 인정하며 재산분할 비율을 65대 35로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판부의 결정적 실수가 드러나면서 최 회장 측에 반격의 빌미를 줍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애당초 △최 회장이 대한텔레콤 주식을 취득할 당시 주당 가치를 8원 △최 선대회장 별세 직전(1998년 5월) 가치는 주당 100원 △SK C&C 상장 시 주당 3만5천650원으로 추산했습니다.
이 결론대로라면 최 선대회장의 기여분은 줄고 최 회장의 기여는 늘어납니다. 하지만 최 회장 측은 대한텔레콤이 두 차례 액면분할한 점 등을 들어 최 선대회장 별세 직전 주당 가치는 100원이 아닌 1천원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도 계산상 오류를 인정하고 수정했지만 재산분할액 등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최 회장 측으로서는 재산분할의 근거가 오류인 만큼 그 결과치인 분할 액수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 자금 유입을 근거로 노 전 대통령 일가와 최 선대회장 일가의 재산이 혼화한 만큼 최 회장의 SK 주식 지분에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는 항소심 재판부의 논리도 쟁점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을 통해 SK그룹 성장에 기여했다는 점을 1조3천808억원을 노 관장의 몫으로 봤습니다.
하지만 1991년 300억원이 유입됐다는 점을 전제로 하더라도 해당 자금의 거래는 노태우-최종현 개인간 관계로 볼 수 있고, 1994년 최 회장의 대한텔레콤 지분 취득과 관련은 없다는 반론이 제기됩니다.
또 항소심 재판부는 SK그룹 성장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무형적 기여’를 인정하면서 △최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을 면전에서 이동통신을 시연한 점 △공중전기통신사업법 개정에 따른 특혜 △대통령 해외 순방 당시 SK 경영진 수행한 사례 등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최 회장의 이동통신 사업은 특혜 의혹이 일었던 제2이동통신사업과 무관하고 △법 개정을 통한 4대 그룹 통신서비스 진출을 제한에 따른 선경 특혜 주장에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취소 오히려 불이익을 받은 점 △재계 일원으로 해외 순방 수행에 나선 점 등을 들어 반박이 제기됩니다.
그동안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 등을 통해 SK그룹 특혜 의혹에 대해 부인한 점도 해명할 근거를 찾아야 합니다. 그는 회고록에서 “나와 선경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해 결국에는 선경이 (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는 사태에 이르게 됐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실제 어떤 형태로든 최 선대회장 측에 전달됐다면 SK그룹 측에 기여한 점은 무엇일까요. 취재 결과, 실제 최 선대회장이 1991년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개인자금 부족 현상을 겪은 것은 대체적으로 맞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1991년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30대 기업군의 비주력업종 투자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금융기관의 여신관리규정상 제한에 따라, 최 선대회장은 개인 명의로 주식을 양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선경과 선경건설이 각각 100억가량, 선경합섬과 유공해운, 유공가스 등 계열사 수십억원씩 분담하는 ‘편법’을 이용하며 부족한 개인자금 부담을 덜어낸 만큼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을 개연성은 낮아 보입니다.
무엇보다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전달된 것으로 추정되는 1991년을 전후로 SK그룹은 이미 재계 7위 기업으로 성장한 상태였습니다. SK그룹 자산은 1987년 약 2조5천억원, 1989년 약 3조5천억원, 1992년 약 8조7천억원으로 추정됩니다.
성장 가도를 달리는 대기업이라는 점에서 권력 말기 정권 ‘비자금 창고’에서 300억원을 꺼내쓸 만한 가치에 대해 의문 부호를 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만약 비자금 300억원이 전달돼 회사 성장에 기여했다고 하더라도, 노태우 일가 구성원인 노 관장의 1조3천억원대 재산분할은 상식적으로 무리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쟁점4: 커지는 ‘노태우 비자금 환수’ 논란
이혼소송과 직접적인 관련성은 낮으나, 노태우 비자금 논란에 다시 불씨가 지펴진 것은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큽니다. 노 관장이 1조3천억원대 재산분할 결정을 받아냈음에도 ‘노태우 비자금’이라는 수렁에 다시 빠지는 형국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노 관장을 비롯한 노태우 일가는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요구받으며 오히려 선친이 조성한 ‘노태우 비자금의 저수지’로 지목받는 신세가 됐습니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국정감사 개시에 맞춰 노 관장과 동생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 노태우 전 대통령 부인 김옥숙 여사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하지만 노 전 관장 등은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국감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법사위는 노 관장 등이 증인 출석을 사실상 거부하자 재출석 요구를 의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 관장 등은 이달 25일 열리는 법사위의 법무부 대상 국감에 출석해야 합니다. 노 관장 일가가 정치권의 ‘노태우 비자금’ 압박에 직면하는 양상이 된 것입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상속, 증여세 과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민수 국세청장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 당시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에 대해 “재판에서 나온 것이든 소스가 어디든 과세해야 할 내용이이면 당연히 (과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국세청 출신의 한 세무전문가 역시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한 상황에서 실제 세금 추징까지 가능할지는 법적 구성 요건 등을 따져 봐야 한다”면서도 “상속·증여세법의 중요한 법리가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는 부과제척기간(15년)이 지나면, 이를 인지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과세할 수 있어 이혼소송 항소심 시점 등을 고려하면 과세를 하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노 관장은 부친 별세 후 자신의 SNS를 통해 “유산을 정리할 게 없어 좋다. 연희동 집 하나 달랑 있는데 동생에게 양보했다. 나는 대신 담요를 집어왔다”고 말한 만큼 ‘맡겨둔 돈’을 대물림한 점에 대해서도 해명이 필요해 보입니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19일 ‘선경 300억원’ 메모에 대해 비자금 은닉과 조세포탈 혐의로 수사해달라는 고발장을 범죄수익환수부에 배당해 고발 내용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혼소송의 결정적 단서로 세상의 빛을 본 ‘선경 300억’ 메모가 숨겨진 노태우 비자금을 다시 들추는 부메랑이 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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