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배터리 산업이 중국의 급성장에 밀려 위기를 맞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하락한 반면, 중국 업체들은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세계 시장을 선도하던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이제는 후발주자로서 추격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서 국내 3사의 합산 점유율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3.5% 하락한 20.2%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 CATL과 비야디(BYD)의 합산 점유율은 같은 기간 39.7%에서 53.6%로 크게 상승했다. 이는 세계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갔음을 보여준다.
LG에너지솔루션은 6.4% 증가한 81.2GWh로 글로벌 3위(점유율 11.8%)를 유지했으며, SK온은 12.4%의 성장을 기록했다. 삼성SDI도 5.4%의 성장을 보였지만, 이 같은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중국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산업은행 강석훈 회장은 9월 열린 ‘KABC 2024’ 컨퍼런스에서 국내 배터리 산업의 위기를 경고했다. 강 회장은 “중국과의 격차는 이제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확대됐다”며, “LFP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한국이 중국에 밀리고 있다. 이는 2010년대 한국이 일본을 역전했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 배터리 산업이 전환점을 맞고 있으며,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KABC를 주최한 SNE리서치 김광주 대표도 “중국에는 캐즘(시장 성장의 단절)이 없다”며, “우리가 말하는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이다. 이제는 한국이 중국을 벤치마킹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정부 지원과 기업 간 협력이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언급하며, 한국 역시 이를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기존 삼원계(NCM) 배터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높고, 안전성과 내구성이 우수하여 화재 위험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CATL과 BYD는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저비용·고효율 전략을 통해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 배터리 3사는 삼원계 배터리에 주력해왔다. NCM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고급 전기차에 적합하지만,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생산 비용이 크게 달라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업체들도 뒤늦게 각형 및 LFP 배터리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GM과 협력하여 각형 배터리를 개발 중이며, SK온은 각형 배터리 양산 준비를 위한 OEM 협의를 진행 중이다.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를 공급하며 이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7년까지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에 약 1조 1,27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반면, 한국 정부의 배터리 연구개발 예산은 2028년까지 1,172억 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지원 격차는 국내 기업들이 기술 개발과 생산 역량을 확장하는 데 있어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배터리 산업을 지원하며, 이를 통해 전기차 시장의 세계적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원 규모나 정책적 뒷받침에서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한국 배터리 산업이 중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과 정부 지원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및 재활용 배터리 기술 개발이 중요하다. 또한, 안정적인 원자재 확보를 위한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와 협력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중국의 대규모 지원과 급성장에 밀린 한국 배터리 산업이 점유율 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기술 개발과 글로벌 협력을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