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산업계가 중남미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페루를 중심으로 지상, 해상, 항공을 아우르는 방산 협력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이번 협력은 중남미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방산업체들이 전통적인 방산 강국인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적극 개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지난해 11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한-페루 정상회담에서는 방산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다각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양국은 지상장비 협력 총괄협약, 해군 잠수함 공동개발, KF-21 부품 공동생산 등 주요 MOU를 체결하며 실질적인 협력의 첫발을 내디뎠다.

페루 지상무기체계 공급 시작
현대로템은 지상무기체계 분야에서 페루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지난 5월, 현대로템은 페루 조병창이 발주한 차륜형 장갑차 ‘K808 백호’ 30대 공급 사업(6천만 달러)을 수주하며 중남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번 협약을 통해 현대로템은 K2 전차를 비롯한 계열 전차, 차륜형 장갑차 후속 물량 등 지상무기체계 전반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특히, 이번 ‘지상장비 협력 총괄협약’은 단순한 계약을 넘어 납기, 사양, 교육훈련, 유지보수 조건 등을 포함한 세부 실행 계약을 위한 포괄적 틀을 마련했다. 이는 한국 방산 기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동시에 페루 군의 현대화를 지원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중남미 최대 규모 함정 건조 프로젝트
HD현대중공업은 해상 방산 분야에서 페루와의 협력을 선도하고 있다. 2023년, HD현대중공업은 페루 국영 조선소(SIMA)와 공동으로 호위함 1척, 원해경비함 1척, 상륙함 2척 등 총 4척의 함정을 현지에서 건조 및 공동 생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프로젝트의 총 계약 금액은 4억 6천만 달러로, 이는 중남미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협력은 단순히 함정을 공급하는 것을 넘어, 현지 조선소와의 기술 이전 및 공동 생산을 포함해 페루 해군의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페루 리마에 지사를 설립해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첫 기자재를 출항시키는 등 빠르게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HD현대중공업은 페루 해군의 노후 잠수함 교체 사업과 관련해 잠수함 공동개발 MOU도 체결했다. 양측은 페루 해군 맞춤형 잠수함을 개발하는 한편, 현지화와 산업 협력을 통해 페루 해군의 기술적 자립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계획이다. 이는 중남미 시장에서 한국 해상 방산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페루, 한국 방산거점으로 부상
페루는 한국 방산업계의 중남미 교두보로 주목받고 있다. 페루 공군은 한국의 FA-50 경공격기와 KF-21을 후보 기종으로 검토 중이며, 이들 기종은 소련제 노후 전투기를 대체할 적합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다. KAI는 페루와 전투기 부품 공동 생산 협약을 체결하며 항공 분야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페루와의 협력은 한국 방산업계의 기술력과 신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특히, 한국과 페루는 과거 KT-1 훈련기, 다목적 군수지원함 등 성공적인 협력 사례를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번 협력은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지상, 해상, 항공 분야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협력으로 발전했다.
중남미는 폭력단체와의 갈등, 마약 범죄, 국경 분쟁 등으로 인해 방산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중남미 방산 시장은 2029년까지 약 43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브라질, 콜롬비아, 멕시코 등 주요 국가들은 군사비 지출을 확대하며 노후 장비 현대화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시장 진출에는 도전 과제도 따른다. 중남미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러시아 장비에 의존해왔으며, 최근까지도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페루, 베네수엘라, 니카라과는 러시아의 주요 고객으로,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등은 중국산 무기를 수입해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 중남미 국가들과의 신뢰 구축, 기술 교육 및 공동 생산 등의 G2G(정부 간 계약) 방식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방산강국 틈새 파고드는 전략 필요
전문가들은 중남미 시장 공략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 방산-건설 인프라 수출을 연계한 패키지 딜을 활성화해야 한다. 둘째, 중소·중견 방산업체의 수출 역량을 강화해 부품 및 장비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 셋째, 수출금융 지원 확대를 통해 중남미 국가들의 예산 제약을 보완해야 한다.
한국 방산업계는 최근 10년간 중남미 권역에서 KT-1 훈련기, 해안 경비정, 장갑차 등을 수출하며 시장 입지를 다졌다. 이와 함께 페루와 콜롬비아를 거점으로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등으로 진출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 방산업계는 단순한 수출을 넘어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중남미 시장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방산 수출은 한국의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동시에 산업 전반의 성장을 촉진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이 중남미 방산시장에서도 4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며 글로벌 방산 수출 강국으로의 비상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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