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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37> 초가삼간 노래

한양경제 2025-01-23 10:46:50
‘벼슬도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 위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박재홍이 부른 ‘물레방아 도는 내력’은 6.25 전쟁 후의 혼란과 도시 생활의 좌절에서 파생된 망향가(望鄕歌)이다. 전란의 상처와 각박한 도시의 삶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초가집’은 바로 그 귀향의 상징적 공간이다.

전쟁으로 도시는 폐허가 되고 사회가 풍비박산이 나는 것을 몸소 겪으며, 타향에서의 부귀영화보다 고향에서 소박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의 심정을 반영한 노래이다. 도시에서의 현실이 고달플수록 정겨운 고향의 초가집이 그립기 마련이다. 대중가요에 초가집이 출현하는 이유이다. 1967년 최정자가 노래한 ‘초가삼간’은 시골집 오막살이가 손에 잡힐 듯 그림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실버들 늘어진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정든 님과 둘이 살짝 살아가는 초가삼간, 세상살이 무정해도 비바람 몰아쳐도 정이 든 내 고향, 초가삼간 오막살이 떠날 수 없네’. 최정자의 ‘초가삼간’은 1972년에 등장하는 남진의 '님과 함께'에 나오는 초가집과 결이 많이 다르다. ‘님과 함께’의 초가집이 보다 넉넉하고 이상적인 공간이라면 '초가삼간'은 좀 더 소박한 집이다. 

가난하지만 정든 임과 오손도손 살아가면 더 바랄게 없는 터전이다. 리듬도 그렇다. 경쾌하고 희망적인 분위기와 조용하고 서정적인 차이가 있다. 최정자의 간드러진 민요풍의 가락과 남진의 박진감 있는 성음도 다르다. 초가집을 노래하면서도 남진의 목소리에 이렇게 힘이 실린 것은 1960,70년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인들이 얻은 자신감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 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 나는 좋아 나는 좋아 님과 함께면,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남진의 ‘님과 함께’에는 ‘우리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이 꿈틀거린다.

경제성장 정책과 새마을 운동에 박차를 가하던 당시 박정희 정권으로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가요계의 커다란 우군을 만난 셈이었다. 근대화 정책이 이루어낸 눈부신 성과를 긍정적으로 조명하는 가요들이 나오게 된 시대적인 배경이다. ‘님과 함께’는 가사와 곡조가 시대적 상징성과 대중적 호응도에 부응하며 단연 최고의 인기 가요로 부상했고, 남진은 가요계의 젊은 황제로 등극했다. 

산업화와 이촌향도의 동시대를 노래하면서 남진은 나훈아와도 차별화 된 모습을 보였다. 나훈아가 정통 트로트 리듬에 향토적이고 조용한 창법을 구사한 반면, 남진은 도시적인 분위기에 불꽃같은 노래와 춤을 발산하며 대중을 매료시켰다. 나훈아가 산업화의 그늘을 애절하게 노래했다면, 남진은 근대화의 성과를 님과 함께 누리자고 열창했다. 그곳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이다 

‘초가삼간 집을 짓는 내 고향 정든 땅, 아기 염소 벗을 삼아 논밭 길을 가노라면,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인 것을, 왜 남들은 고향을 버릴까 고향을 버릴까, 나는야 흙에 살리라 부모님 모시고 효도하면서 흙에 살리라’. 1973년 홍세민의 히트곡 ‘흙에 살리라’는 도시화에 따른 이촌향도의 물결 속에 고향의 소중함을 흙냄새로 승화시킨 노래이다. 도시로 나간 사람들에게 띄우는 초가집 애향가였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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