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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23> 늦겨울, 봄에로의 이행기

2월은 늦은 겨울 추위는 에이잖고
눈 대신 비가 오고 얼음에 금이 가니
겨울도 끝나간다네 잘 가거라 추위야
한양경제 2025-02-03 09:46:58
2월 초순에 양지 바른 곳에서 벙글고 있는 매화 꽃봉오리. 이효성

그레고리력에서 2월은 늦겨울이다. 2월의 평균기온은 1월보다 높기는 하지만 1월의 추위가 계속 이어지면서 2월 날씨도 상당히 춥다. 특히 2월 초는 대한 절기의 끝자락으로 흔히 혹한이 이어진다. 하지만 2월 4~5일 경에 ‘입춘(立春)’ 절기가 드는데 입춘은 황도 상에서 태양이 동지와 춘분의 중간점에서 춘분 쪽으로 들어서는 봄의 길목이라 할 수 있는 시점이다.  

그래서 절기력에서는 입춘부터 봄으로 친다. 그렇다고 따뜻한 봄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2월은 기본적으로는 추운 겨울 날씨가 지배하는 때다. 그러나 중순이 넘어서면 서서히 추위가 풀리면서 하순에 이르면 눈도 얼음도 녹기 시작하는 ‘우수(雨水)’ 절기가 오고 추위에서 매서움이 가신다. 

혹한은 이르면 2월 초순으로, 늦어도 중순으로 끝난다. 물론, 혹한이 끝난다고 겨울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겨울의 기운은 3월이나 4월까지도 꽃샘추위 형태로 끈질기게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살을 에는 겨울다운 겨울은 대체로 2월 중순으로 끝이 난다. 2월의 끝자락에 이르면, 어쩐지 추위가 에이지 않고 때로는 가슴팍으로 언뜻언뜻 밀려오는 훈풍을 느낄 수도 있게 된다.  

추위의 매서움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봄기운이 밀려오고 있음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 추위 속에서 봄을 기다리던 우리의 마음에가 아니라 우리의 감각에, 특히 촉각에,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는 마음속에 먼저 왔던 봄이 이제 드디어 감각에도 오는 것이다. 

2월 초는 동지로부터 약 40여일이 지난 시점이므로 낮이 상당히 길어지고 태양이 꽤나 높아지기 때문에 양지에서는 햇볕이 사뭇 강하다.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모든 차문을 다 닫은 채로 차 안에 있으면 히터를 켜지 않아도 차 안의 공기가 달아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낮에 햇볕으로 지붕에 눈이 녹아 낙수로 흐르던 물이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지다가 밤이 되면 얼어붙어 아침에는 처마에 고드름이 많이 열린다.  

그렇지만 아직은 지구가 식을 대로 식어버린 상태이므로 기온이 그리 급격히 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2월 하순에 이르면 햇빛이 더 강해져 눈 대신 비가 오고 연못이나 호수의 얼음에 쩍쩍 금이 가면서 얼음 깨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고드름이 녹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와 얼음에 금이 가는 소리는 곧 봄이 오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제 점점 강해지는 태양의 열기와 함께 봄의 도도한 진군이 시작되는 것이다. 

천체의 운행은 차질이 없이 진행된다. 자전축이 공전축에 23.5도 기운 채로 자전하면서 태양의 주위를 1년에 한 바퀴 공전하는 지구의 운행에 따라 밤과 낮의 길이가 바뀌고 일조량과 온도에 차이가 난다.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다가오는 시기에는 일조량이 조금씩 많아지고 온도가 조금씩 오른다. 이 미세한 변화를 식물들과 미물들은 놓치지 않고 파악하여 봄의 소생을 준비한다. 나무에게는 그 준비의 하나가 한겨울 동안 얼지 않기 위해 멈추었던 수액의 이동을 다시 개시해 수액을 가지 끝으로 운반하는 일이다.  

나무들은 일조량과 온도의 변화 등으로 봄이 오고 있음을 알아내어 그 동안 분화시켜 왔던 잎눈과 꽃눈을 키워서 봄이 오면 활짝 피우기 위해 미리부터 수액을 가지 끝으로 운반하는 것이다. 고로쇠나무와 같은 경우는 2월 중순 경부터 수액이동을 시작한다. 매실나무나 산수유 등과 같은 일찍 꽃이 피는 나무의 경우 양지바른 곳에 있는 것들은 2월 초순경에 꽃망울이 벙글기도 한다. 매화는 제주도에서는 2월 초순에 만개한다. 

나무들이 헐벗은 채 추위를 견디고 있다고 해서 나무들이 겨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울 동안 나무들은 따뜻한 봄이 오면 피워낼 잎눈과 꽃눈을 분화시키고 조금씩 키워낸다. 그러다가 봄이 임박하면, 수액을 대량으로 잎눈과 꽃눈이 있는 가지로 올려 보내게 된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2월 초순에도 이미 잎눈과 꽃눈이 상당히 자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월 하순이 되면 수액의 운반으로 잎눈과 꽃눈은 더욱 자라 툭툭 불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무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잎을 떨구고 수액 이동을 최소한으로 줄인 채 동면한다. 그러다가 이처럼 적당한 시점부터 소생을 위해 수액 운반을 개시하고 잎눈과 꽃눈을 키울 대로 키웠다가 마침내 적절한 시점이 되면 잎과 꽃을 활짝 피워내는 것이다. 

이는 온대지방의 나무들이 겨울의 추위에 적응한 방식이다. 그래서 온대 지역의 초목의 일부는 추운 겨울을 겪어야만 꽃을 피우도록 진화해 추위가 없는 상하의 지역에 옮겨 심으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겨울은 단지 추위를 이겨내는 것으로 족한 시기가 아니라 봄의 소생을 예비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담금질이 없이는 명검이 되지 못하는, 또는 시련이 없이는 큰 인물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효성 전 성균관대 언론학과 교수·전 방송통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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