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민초들의 정서를 진솔하게 그린 엮음아리리에 등장하는 물레방아는 토속적인 에로티시즘의 전형이다. 물살을 안고 잘도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떠올리며 음양의 이치와 구실에 충실하지 못한 남편에 대한 불만을 해학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공간적인 특징으로도 물레방아는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은밀한 장소로 많이 활용되었다. 우리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물레방아가 그 전형(典型)이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장돌뱅이 허생원의 하룻밤 사랑도 그랬다.
허생원은 무더운 객줏집 토방이 답답해 밤중에 혼자 개울가로 나왔다가 우연히 들어간 물레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다. 그리고 꿈결과도 같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나도향의 '물레방아'에서 마을의 부자인 신치규 영감과 머슴의 젊은 아낙이 육체적 사회적 욕망을 해소한 곳도 물레방앗간이다.
여기서 ‘쿵더쿵 쿵더쿵’ 돌아가는 물레방아 소리는 다분히 육감적이다. 이렇게 근대의 농촌을 배경으로 한 물레방아는 인간의 욕망과 애정 관계를 묘사한 문학적 상상의 공간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도 그랬을 것이다. 농촌에서 밀회의 공간으로 물레방앗간만한 곳이 없었다. 물길 따라 자리한 물레방아는 마을 어귀나 가장자리에 있어 밤에는 인적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운명의 수레이자 에로티시즘의 상징인 물레방아는 대중가요 속에서도 그 내밀한 기능을 시사했다. ‘하룻밤 풋사랑에 이 밤을 새우고, 사랑에 못이 박혀 흐르는 눈물, 손수건 적시며 미련만 남기고, 말없이 헤어지던 아~~ 하룻밤 풋사랑’. 1956년에 나온 손인호의 ‘하룻밤 풋사랑’은 노랫말에서 물레방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잊지 못할 그날 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낯설은 타향땅에 그날 밤 그 처녀가, 웬일인지 나를 나를 못 잊게 하네, 기타줄에 실은 사랑 뜨내기 사랑, 울어라 추억의 나의 기타여’. 손인호가 그 이듬해에 발표한 ‘울어라 기타줄’ 역시 ‘메밀꽃 필 무렵’과 정서적 의미가 상통한다. 낯설은 타향땅에서 우연히 맺은 하룻밤 풋사랑의 장소로 물레방앗간을 떠올려본다. 나그네의 고단한 여정에서 운명처럼 마주했던 잊지 못할 추억의 공간이다.
‘물을 안고 돌아가는 물레방아는, 냇가에서 시름겨워 달을 안고 도네, 님 생각에 젖어 사는 이내 마음을, 떠나버린 그 사람을 못 잊어 사네, 첫사랑 그 사람을 못 잊어 사네...’ 1973년 문주란이 부른 ‘그 사람’은 물길을 잃어버린 채 달을 안고 공회전을 하는 물레방아의 현실을, 떠나간 옛사랑을 못 잊어 하는 빈 가슴에 비유하고 있다. 옛 정취와 기능을 잃어버린 물레방아에 대한 정서적 동질감의 토로이다.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돌아, 정처 없이 이곳에서 저 마을로, 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 밤이면 이슬에 젖는 나는야 떠돌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가수 조영남이 톰 존스의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를 번안해서 불렀던 '물레방아 인생'의 노랫말에는 삶에 대한 달관의 정조가 어려있다. 민초들의 인생이란 그랬다.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순리대로 둥글둥글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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