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인석에 앉은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억울함도, 반성도, 해명도 없었다. 표정은 담담했고, 고개는 좀처럼 숙여지지 않았다. 공익법인을 이끄는 이사장의 모습이라기보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계산된 침묵을 유지하는 개인의 뒷모습이었다.
15일 서울남부지법 형사13부가 연 1차 공판.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구연경 대표와 남편 윤관 BRV 대표는 피고인석에 나란히 앉아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윤 대표가 비상장사 메지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정보를 구 대표에게 전달했고, 이를 바탕으로 약 1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윤관, 구연경 부부는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재판정에 나온 구 대표의 모습은 LG가(家)의 장녀이자 공익법인 대표로서의 무게를 느끼기엔 한참 부족했다. 모든 책임을 부인한 채 증거 하나하나에 반발했고, 공익적 위치에 대한 성찰이나 언급은 없었다. 오히려 법망을 피하려 애쓰는 한 개인만이 보였다. 메지온 외에 고려아연 등 다른 종목의 주식거래 기록까지 증거로 제출되자, 피고인 측은 “무관한 자료”라며 반발했지만, 검찰은 “사건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고 맞섰다.
재단 이름을 등에 업고 코스닥 기업 주식을 사들인 인물이 바로 구 대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공익법인의 신뢰는 무너졌다. 그는 논란이 커지자 문제의 주식을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이는 위법성 자체를 희석하려는 ‘사후 정리’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기부는 범죄 사실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
공판이 끝난 직후, 법정 밖은 소란스러웠다. 한 시민이 윤관 대표에게 “피해자가 얼마나 많은데”라며 고함을 지르고 멱살을 잡으려 했다. 윤 대표는 아무 말 없이 차량에 올라 현장을 빠져나갔다. 이 시민은 자신을 삼부토건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윤 대표는 과거 삼부토건 창업자의 손자인 조창연 씨와 관련된 사기 혐의로 피소된 바 있고, 국세청과도 123억 원 규모의 종합소득세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정 안팎에서 드러난 이 부부의 태도는, 책임의 자리에 선 인물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논란 속에서도 구연경 대표가 LG복지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책무와 윤리를 요구받는 자리에서조차, 그는 아무 설명도 내놓지 않았다. 등기부상 이사들도 대부분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견제나 감시 기능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본지가 수차례 접촉한 이사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공익법인의 틀만 유지한 채, 실질적으로는 ‘사유화’됐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다.
LG복지재단은 명목상 LG그룹과는 별개의 조직이다. 그러나 ‘LG’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상, 그 이름이 갖는 사회적 신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공익법인의 이름 뒤에 숨어 있는 방어 태세는, 이제 LG그룹 전체에 대한 신뢰에도 상처를 내고 있다. 경기도 역시 재단의 정상화를 위해 LG와의 협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공익’이란 이름을 쓰는 이상, 이사장의 자리는 명예가 아닌 책임의 무게로 유지되어야 한다.
법정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죄가 되는 건 아니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는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침묵도 메시지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침묵은, 공익의 얼굴을 한 사적 이익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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