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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56> 전쟁가요(1)-진격과 후퇴

한양경제 2025-06-05 10:06:57
미증유의 동족상잔인 6·25 전쟁은 일제의 식민통치 사슬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생독립국인 한국 사회에 메가톤급 충격을 가했다. 6·25 전쟁은 광복 후 우리 현대사를 송두리째 뒤흔든 참혹한 사건이었다. 같은 민족인 남한과 북한이 그리고 좌익과 우익이 서로 총구를 겨누며 처절하게 싸운 상처는 넓고도 깊었다. 전국토가 전쟁터로 변했고 온국민이 피란민으로 내몰렸다.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전선에서 스러져 간 애틋한 젊은 넋들이 그 얼마이며, 대구와 부산으로 밀려든 피란민들의 삶은 얼마나 가혹했을까. 전쟁이 할퀴고 간 상흔은 우리 가요 속에도 선명히 남아있다. 시대의 거울인 대중가요는 전란의 현장을 증언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노래가 탄생한 것이다. 전쟁이라는 비극의 시대가 명곡 탄생의 요람이 되는 역설의 미학을 빚어낸 것이다. 

전란이 산하를 휩쓸자 상당수 가요인들은 정훈공작대에 편입되어 승전 군가를 만들거나 위문공연에 나섰다. ‘좋은 군가는 대포 소리에도 지지 않는 예술적 무기’라는 명언도 이때 등장했다. ‘전우야 잘자라’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한국전쟁의 기승전결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곡가 박시춘의 말이다. 대중가요 성격의 군가인 ‘전선가요’ 또는 ‘전쟁가요’ 역시 이들 가요인들의 작품이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자라’. 전선에 나가 있는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노래를 ‘진중가요’라고 한다면, 그 대표적인 노래가 가수 현인의 ‘전우야 잘 자라’일 것이다. 6.25 전쟁과 관련 가장 먼저 나온 진중가요이기도 하다.

‘전우야 잘 자라’는 북진통일을 위한 진격의 주제곡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낙동강 전선에서 공방을 거듭하던 전세가 역전되면서 북진과 함께 서울을 되찾자 명동에서 만난 작곡가 박시춘과 작사가 유호가 의기투합해서 만든 가요이다. 북진통일의 기세에 맞춰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울 노래가 필요했던 것이다. 군가와 같은 씩씩한 리듬의 노래는 국군의 북진 과정을 서사적으로 그리고 있다. 

낙동강(1절), 추풍령(2절), 한강(3절), 삼팔선(4절)으로 북상하면서 군의 사기를 앙양한 것은 물론 노랫말이 지닌 비극적 서정성으로 인해 온국민이 애창하는 전쟁가요가 되었다. 전장의 비애와 가요의 감성이 어우러진 명곡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군가는 최고의 예술적 무기’라고 했던 작곡가 박시춘의 가요에 대한 신념을 증명한 노래였다. 하지만 1.4후퇴와 함께 노래의 운명도 역전되었다.

‘전우의 시체’ ‘꽃잎처럼 떨어져 간’ ‘담배연기 속에 사라진’ ‘흙이 묻은 철갑모’ 등의 노랫말이 후퇴하는 국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병사들에게 패배의식을 조장한다는 이유였다. 1953년 휴전 후에는 다시 복권이 되었지만 급박한 전황에 따라 가요의 명암도 엇갈렸던 시절의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전우야 잘 자라’는 한국전쟁의 기승전결을 그린 ‘박시춘-유호 콤비’의 서곡이었다. 

‘생사를 같이 했던 전우야 정말 그립구나 그리워,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정말 용감했던 전우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정의에 사나이가, 마지막 남긴 그 한마디가 가슴을 찌릅니다...’. 1977년 허성희가 부른 ‘전우가 남긴 한마디’는 전우를 생각하는 우정과 조국을 지키려는 충정이 세월을 뛰어넘어 비장한 감동을 전한다. 작곡가 전오승이 6.25 때 장렬히 전사한 아우를 위해 눈물로 지은 진혼곡이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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