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6> 전쟁가요(1)-진격과 후퇴
2025-06-05
전쟁가요는 이렇게 트로트와 어우러지면서 노랫말의 서정성과 멜로디의 대중성이 시대의 아픔과 서민의 감성에 부응하면서 전쟁의 상처를 위로했다. ‘전선야곡’은 가수 신세영의 눈물 어린 사모곡(思母曲)이기도 했다. 1951년 10월 노래를 취입하던 날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2절 가사 ‘어머니의 흰 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라는 대목이 더 심금을 울리는 이유이다.
전쟁에 나가 있는 아들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게 모성일진데, 오히려 ‘장부의 길을 일러주고’ ‘아들의 무공을 비는’ 어머니가 있을까? 승전의 이데올로기가 투영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역설이 더 비장감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가랑잎이 휘날리고, 이슬이 소리 없이 내리는 달빛 처연한 전선의 달밤은 병사의 내면 풍경에 서정성을 더하며 노래를 명곡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임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가신 뒤에 내 갈 곳도 임의 길이요, 바람 불고 비 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가는 이 가슴엔 눈물이 넘칩니다’. 심연옥이 부른 ‘아내의 노래’(1952)는 신세영의 ‘전선야곡’과 함께 한국전쟁기를 풍미한 진중가요였다. 남편을 생사의 기로인 전선으로 내보내고 고향에 남은 아내들의 결연한 의지를 담은 애국적 응원가였다.
노래는 전쟁터에서 인민군과 맞서 싸우는 남편에게 전투의 정당성을 부여하며 후방에 있는 여성의 동참과 역할까지 강조하고 있다. 처자식을 두고 전장으로 떠났던 남편들에게 전하는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이기는 했지만, 이데올로기적인 요소가 다분히 스며든 관제 가요의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남편을 전선에 보내놓고 후방에 남은 어느 아내가 이렇게 의연할 수가 있을까.
‘태극기 흔들며 임을 보낸, 새벽 정거장 기적이 울었소, 만세 소리 하늘 높이 들려오던 날,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지금은 어느 전선 어느 곳에서, 용감하게 싸우시나, 임이여 건강하소서’. 금사향이 부른 ‘임 계신 전선’(1952)도 유사하다. 전선에 나간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용감하게 싸우더라도 건강하게 무사히 귀환해 줄 것을 기원하고 있다.
노래는 전선으로 떠나는 새벽 정거장과 포연 가득한 전장의 현장감을 품고 있다. 전선으로 아들과 남편을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절절한 심정을 담은 이 노래는 온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노랫말 그대로 태극기 환송을 받으며 전쟁터로 나간 후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도 ‘임 계신 전선’은 전쟁으로 피폐한 당시 대중의 쓰라린 심중을 위무했을 것이다.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임 소식은,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에, 전해 주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 가서, 복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유춘산의 '향기 품은 군사우편'(1954)도 그렇다. 전선에서 보낸 남편의 편지에는 그대의 향기에 앞서 전선의 향기가 묻어있다. 남편을 그리는 애틋한 노랫말 속에 은근히 승전의식과 애국충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