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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 <58> 전쟁가요(3)-피란살이의 애환

피난살이 그린 전쟁가요 주무대는 ‘부산’
이북 월남민, 대구와 부산으로 밀려들어
피난살이는 공포와 가난, 설움의 연속
한양경제 2025-06-26 09:57:50
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의 파죽지세에 낙동강을 따라 최후 방어선이 구축되면서 피란민들은 대구와 부산으로 밀려들었다. 피란살이를 그린 전쟁가요의 현장은 거의 부산이다. 이북 월남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굳세어라 금순아’도 대구에서 만든 노래였지만 북녘 흥남부두와 부산 영도다리가 배경이다. ‘경상도 아가씨’는 부산 중앙동의 사십계단을,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부산역을 무대로 삼고 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홀로 왔다’.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6·25 전쟁 피란민의 주제가였다. 괴나리봇짐을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눈보라가 흩날리는 흥남부두에 구름같이 몰려든 피난민들의 아비규환 속은 가족의 손을 놓쳐버리기 일쑤였다.  

그 처절한 상황과 피맺힌 절규를 응축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피란생활의 애환을 담은 대표적인 노래였다. 누이를 잃어버린 채 부산으로 내려와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주인공의 애타는 심정과 실향의 아픔이 영도다리 난간 위의 초생달로 외롭게 떴다. 노래의 1절은 흥남부두에서 벌어진 이별을, 2절은 부산 피란생활의 고달픈 실상과 망향의식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1·4 후퇴로 대구에 내려온 작곡가 박시춘과 작사가 강사랑은 양키시장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피란민들의 처량한 행색을 보고 이산가족의 대명사이자 피란살이의 주제곡인 ‘금순이’를 착안했다. 작곡과 작사도 즉시에 이루어졌다.  

가수 현인을 찾아 오리엔트레코드사로 데려갔고 군용 담요를 둘러쳐 방음장치를 한 뒤 녹음을 한 노래가 바로 한국전쟁기 불멸의 전쟁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였다.  

‘사십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란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잣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없이 슬피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북녘에서 내려온 월남민의 피란살이 애환을 노래한 ‘경상도 아가씨’는 스스로도 역시 피란민의 신세였던 작사가 손로원과 작곡가 이재호 그리고 가수 박재홍의 합작품이다. 

노래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부산 중앙동 사십계단 인근 대포집에서 탄생했다. 사십계단은 국제시장, 영도다리와 함께 피란민들의 가장 처절한 생존 현장이었다. 노래의 1절 가사는 40계단에 앉아 슬피 우는 이북 피란민 청년에게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운 마음에 사연을 묻는다. 2,3절은 타향살이에 대한 아가씨의 위로와 나그네의 연정 그래도 잊지 못할 향수를 그리고 있다.  

‘보슬비가 소리도 없이 이별 슬픈 부산정거장, 잘 가세요 잘 있어요 눈물의 기적이 운다, 한많은 피란살이 설움도 많아 그래도 잊지 못할 판자집이여, 경상도 사투리에 아가씨가 슬피 우네 이별의 부산정거장’.  

남인수의 노래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6·25 전쟁기 ‘박시춘-유호 콤비’의 전쟁가요 걸작선에서 종점과 같은 노래이다. 피란살이의 정한을 뒤로한 채 환도(還都)의 출발선에 몸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별의 부산정거장’은 휴전협정과 함께 정든 부산을 떠나는 피란민의 아쉬움과 서울로 돌아가는 설레임을 절묘하게 아우른 명곡이다. 열차의 쇠바퀴 소리같은 속도감 있는 전주곡 리듬에 부응하는 가수의 애절한 금속성(聲)이 이별의 서정적 울림을 확산시킨다.

전쟁으로 인한 피란살이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겪어야 했던 공포와 가난과 설움의 연속이었다. 그 애환의 종착역이 부산역이었다.

조향래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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