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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논술] <11> 세습 자본주의

한양경제 2025-07-21 15:51:59
박병윤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속도보다 빠르다”

“지금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부자 되기는 어려운 시대인 것 같아.” 친구의 말에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집값은 몇 억원씩 뛰고, 주식이나 코인은 이미 가진 자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다. 토마 피케티가 말한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다’는 공식이 떠올랐다.  

즉 자본으로 버는 돈이 노동으로 버는 돈보다 빠르게 늘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철수가 열심히 일해서 연봉이 3% 오를 때, 누군가는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7~8%의 수익을 얻는다. 이 차이가 쌓이면, 가진 자는 더 많이 갖게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때, 세습 자본주의는 고착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3년 출간한 ‘21세기 자본론’에서 자본주의가 구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한다. 핵심은 자본수익률(r)이 경제성장률(g)보다 높을 경우, 부는 노동이 아닌 자산과 상속을 통해 집중되며, 결국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특히 자산을 상속받은 사람들은 시작부터 유리한 위치에 있고, 그 자산이 또 수익을 낳으니 세습 자본주의가 굳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250년에 걸친 역사적 데이터를 분석해, 이런 현상이 단지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불평등이 줄어든다며 선성장 후분배를 정당화하는 쿠즈네츠 곡선의 이론을 통계자료를 들어 반박하고 있다. 

“노동으로 얻는 소득보다 상속이나 결혼을 통한 자산 획득이 훨씬 유리한 현실”

“자네가 변호사가 되면, 쉰 살에야 겨우 5만 프랑을 벌게 될 걸세. 하지만 상속녀와 결혼하면 그보다 훨씬 더 빨리, 더 많이 벌 수 있지.”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 속 보트랭의 충고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노동으로 얻는 소득보다 상속이나 결혼을 통한 자산 획득이 훨씬 유리하다는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충고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날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최근 발표된 한국사회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청년층의 자산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청년들은 ‘벼락거지’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자산 격차에 좌절하고, 부모의 도움 없이 집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서울의 아파트는 몇 년 사이 수억 원이 올랐고, 월급을 아무리 모아도 따라잡기 어렵다. 결국, 자산을 상속받거나 결혼을 통해 자산을 획득하는 것이 노동보다 더 빠른 부의 축적 경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 다른 사례는 교육이다. 고소득층은 자녀에게 더 많은 사교육을 투자할 수 있고, 이는 명문대 진학으로 이어진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서울대·연·고대의 국가장학금 신청자 중 고소득층 비율이 50%에 육박한다고 한다. 교육 기회조차 자산에 따라 결정되는 현실이다. 

“글로벌 부유세, 누진소득세 강화, 상속세 확대, 복지제도 확충 등의 정책 필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케티는 글로벌 부유세 도입, 누진소득세 강화, 상속세 확대, 복지제도 확충 등의 정책을 제안한다. 그는 이러한 조치들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는 어렵더라도, 자본주의의 민주적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논의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21세기 자본론’은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부의 불평등과 불안정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설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여,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박병윤 교수

필자 - 박병윤 박사(경제학) : 현) 계명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  일간신문에 ‘박병윤의 논술과 심층면접 교실’ 70회 연재,  교육연수원에서 중등 논술지도교사 직무연수담당, 교재: 통합논술의 실전과 지도요령, 박병윤,  계명대에서 ‘경제학’, ‘일반사회교육론’, ‘일반사회논리및논술’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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