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주필의 시사풀이] 관세 협상에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
2025-10-13
묻기, 답하기, 인사하기, 욕하기, 흉보기, 다투기(말싸움), 거짓말하기, 칭찬하기, 비난하기, 가르치기, 배우기, 전하기, 약속하기, 사과하기, 초대하기, 추천하기, 명령하기, 회의하기, 선언하기 등등. 이런 행위들은 말에 의해서만 제대로 수행되고 말에 의하지 않고는 수행될 수 없다. 이처럼 말에 의해서 수행되는 행위를 언어학에서는 ‘언어 행위(speech act)’라고 부른다.
언어 행위는 크게 네가지 요소 또는 단계로 나뉜다. 첫째 요소는 어떤 표현을 언어로 소리 내는 발화 행위, 둘째 요소는 그 발화에 의해 어떤 내용을 뜻하는 언표 행위, 셋째 요소는 그 언표에 의해 화자가 자신의 의도를 나타내는 언표내 행위, 넷째 요소는 언표내 행위에 의해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언표외 행위다. 언표외 행위는 어떤 이의 언표내 행위 즉 의도가 상대에게 미치는 효과라 할 수 있다. 언어학에서는 언표내 행위 즉 화자의 의도의 전달을 중시하여 언어 행위를 언표내 행위와 동일시한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 삶에서는 화자의 의도가 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언론학, 정치학, 사회학 등에서는 언표외 행위가 더 중시된다.
대한민국의 경주에서 개최된 ‘APEC 2025’(10.27~11.1)라는 21개 회원국 수천 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커다란 국제적 외교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외교(外交, diplomacy)야말로 전형적으로 말에 의해 수행되는 언어 행위의 하나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외교라는 말은 ①국가 간의 협상을 수행하는 기술과 실천이라는 뜻도 있고, ②적대감을 일으키지 않고 일을 처리하는 솜씨라는 뜻도 있다. 두 번째 뜻은 첫 번째 뜻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기서 ‘솜씨’는 대체로 ‘말솜씨’를 뜻한다. 말할 것도 없이, 협상은 말로 진행되는 언어 행위이고, 상대에게 적대감을 일으키지 않고 일을 처리하려면 말솜씨가 아주 좋아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APEC 2025’라는 국제적 외교 행사에서 전통적인 외교적 화법과는 다른 화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도 반감을 사지 않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통적인 외교적 화법에서는 상대의 반감을 사지 않거나 낮추기 위해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언사는 최대한 자제하고 에둘러서 완곡하게, 심지어는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것이 상례였다. 특히 국가 지도자는 좋은 말만 하고 싫은 말이나 험한 말은 실무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완곡어법이나 애매모호한 말 대신 직설적인 어법을 사용했으며 좋은 말만 하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이 대통령은 자신의 의도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비외교적 화법, 즉 비외교적 언어 행위로 오히려 상대에게 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이 대통령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뜸 “북한과 중국을 감시하려면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 그 동안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 공급을 허용해 달라”고 보통은 비공개 회의에서나 말해야 할 민감한 사항을 공개석상에 과감하게 매우 직설적으로 요구했다. 이런 비외교적 언어 행위에 트럼프는 살짝 놀란 듯했지만 곧 웃음을 보였고 다음날 SNS에 핵추진 잠수함을 허용하는 글을 올려 이 대통령의 비외교적 언어 행위가 매우 효과적이었음을 입증했다.
다른 또 하나의 예를 살펴보자. 한중 정상회담 중 선물 교환할 때에 시진핑 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선물한 샤오미 휴대전화를 보고 이 대통령이 “통신 보안은 잘 됩니까?”라고 농담을 하자 주위 사람들이 다들 크게 웃었다. 그러자 표정이 없기로 유명한 시 주석도 웃으면서 “혹시 뒷문이 있는지 확인해보세요”라고 대꾸했다. 중국의 전자 제품에 백 도어(뒷문)가 설치되어 있다는 항간의 소문을 지적한 이 대통령의 뼈 있는 농담에 시 주석이 그거 확인해보라고 역시 농담으로 받아넘긴 것이다. 일반적인 외교 무대에서는 아무리 농담이라고 해도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는 언사는 매우 금기시된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그에 대한 농담조의 언어 행위로 분위기를 오히려 더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러한 비외교적 화법으로 더 큰 효과를 얻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매우 자유롭고 솔직하게 그러나 정중하게 할 말은 하는 매우 친화적인 그의 성품 덕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성품은, 타고난 것이든 정치가로서 성장하면서 얻게 된 것이든, 이 대통령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다. 그리고 오랜만에 그런 성품을 가진 대통령을 갖게 된 것은 대한민국으로서도 커다란 행운이다. 그 행운 덕에 한미 간의 경제적 협력 관계도 잘 풀리고 있고, 얼어붙었던 중국과의 관계도 해빙을 맞고 있고, 세계적으로 선진국 한국의 모습도 더욱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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