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주필의 시사풀이] 남북한이 함께 도약할 수 있는 기회
2025-09-29
‘APEC 2025’를 주최함으로써 우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도자들에게 내란을 극복하고 경제, 군사, 문화 강국으로서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최고 민주 국가로서 국제적 위상을 과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아울러 3개월을 버텨온 한미 관세 회담의 합리적 수준의 종결,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핵추진 잠수함 승인, 싸드 이후 후퇴한 한중 관계 정상화, 공급 부족으로 구입이 어려운 엔비디아의 AI칩 GPU 26만 개를 한국에 공급하겠다는 젠슨 황 대표의 공개적 약속 등등의 실질적인 많은 성과도 거두었다. 이들 성과는 한국의 달라진 위상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들 성과는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우리 언론들도 이들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그 의미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미래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중대한 의미가 있는 일의 하나가 우리 언론들에 의해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간과되었다. 그것은 바로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위원장과의 기대했던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실망하지 않고 곧 그를 만나겠다고 한 발언이었다. 언론들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만을 중시한 탓에 앞으로 만나겠다는 의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의지는 한반도의 미래에 매우 중요하고 따라서 관심을 받아 마땅하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노력을 했겠지만 ‘페이스 메이커’를 자처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중간자 역할에도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서는 한국에 더 머무를 수 있다고까지 말하면서 은근히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사일을 쏘았고,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이번에는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과 회담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아무런 짜증이나 불평 등의 부정적 반응 없이 오히려 자신을 탓하면서 계속 김정은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김정은을 만나려는 자세가 매우 강하고 확고하며 일관됨은 그의 발언에서 표출되었다. 경주 APEC에 참석하기 전에는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는 말을 계속하면서, 비공식이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일 수 있다”는 멘트로 북한이 원하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임을 확인하고, “이웃 중국과 연이어 만나자 한 것은 무례했다고 생각한다”며 “일정이 매우 빠듯하다”고 자책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반면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늘상 있는 일”로 넘겼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올 것이며 머지않은 미래의 어떤 시점에 북한과 만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만나달라고 애걸하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이렇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김정은을 만나려고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와 진정성이 있다. 그는 나름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부동산업자 출신이어서 기본적으로 평화 지향적이고 전쟁에 반대한다. 그리고 정치권 출신이 아니어서 전쟁이나 대결을 선호하는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나 네오콘의 이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게다가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핵무력을 완성해가는 북한과 대결보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거나 미국 편으로 만드는 것이 미국 안보에도 더 유리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북한에 리조트 개발 등과 같은 부동산 사업을 벌이고 싶은 욕망도 있고, 그를 통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한의 화해를 이끌어낸 공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고 싶은 명예욕도 있는 듯하다. 우리로서는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1기 집권 때에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김정은과의 대화에 공을 들인 나머지 3번이나 만나기도 했다. 베트남 하노이 회담에서는 공식적인 합의를 도출하기 직전까지 갔으나 네오콘인 제임스 볼튼 안보 보조관과 일본의 방해공작으로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서 김정은을 실망시킨 나머지 김정은은 다시 만나자는 트럼프의 구애에 쉽게 응하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에 2기 집권기인 지금 그는 더 절실하고 진지하게 김정은과의 대화를 원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언행에 매우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이전의 미국의 한반도 기본 전략은 그 현상유지였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한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도 ‘전략적 인내’라는 말로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현상유지로 일관했다. 바이든 행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는 사이에 북한은 핵무력을 거의 완성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정치권 출신이 아니라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한 것이다. 그랬던 북미 대화 노력이 바이든 행정부 때 중단되었다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서 다시 북한과의 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그런 트럼프의 노력이 성공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이런 러시아의 속마음은 경주 APEC에 푸틴 대신 참석한 알렉세이 오베르추크 러시아 부총리의 “러시아, 트럼프의 ‘한반도 평화’ 의지에 모든 조치 환영”이라고 말한 언명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국과 가까워진 듯하나 속으로는 중국을 불신하고 있고, 경제 협력 파트너로서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본은 기술은 좋으나 비용과 공기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이에 반해 한국은 기술, 비용, 공기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경쟁력이 크고 무엇보다 신뢰할 수 있는 나라로 평가한다. 그래서 러시아로서는 앞으로 전개될 극동 개발 프로젝트에서 한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원하기에 트럼프의 한반도 평화 의지를 응원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북한과의 대화 노력과 그에 대한 러시아의 전적인 응원은 우리에게는 천만 다행이다. 그런 대화 노력으로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남북 관계도 개선되고,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개성 공단을 재가동하는 등으로 남북 간의 경제 협력도 재개될 수 있다. 그러면 남한의 자본력과 기술력 그리고 북한의 노동력과 자연 자원의 결합으로 남북한은 세계 산업 제품의 공급망에서 중심국이 될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또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경협이 재개되면 남한은 북한의 노동자와 함께 러시아의 가스전 연결, 북극항로 개척을 비롯해 여러 극동 개발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면 남북한 모두 막대한 수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의 ‘피스 메이커’ 역할을 보조해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하겠다고 천명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드디어 ‘암약’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남한은 겉으로는 나서지 않되 속으로는 온갖 접촉망을 동원해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연결과 통로 구실을 해야 한다. 그 역할의 정도에 따라 앞으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과 그에 따른 경제 협력에서 우리의 발언권의 크기와 세기가 결정될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지켜만 보고 있다가는 한반도 평화화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
북한은 언제까지나 러시아나 중국만 믿고 자신의 권위와 체면 세우기에만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은 북미 관계 개선과 경제 제재 철회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벌써 2년을 거의 넘겼기에 앞으로 겨우 2년 남짓 남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끝나면 앞으로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냉전의 잔재인 대결의 자세를 버리고 남북한이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나아가려면 트럼프의 한반도 평화 노력에 남북한 모두 적극적으로 부응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남한이나 북한이나 꾸물댈 겨를이 없다. 물이 들어 왔을 때를 놓치지 말고 재빨리 노를 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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