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패러독스]<10> 홍콩 H지수 연계 파생증권, ELS의 ‘공포’-下
2024-02-29

오래전 인류는 사냥도 하고 농사도 지었지만 일 년 내내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하진 못했다. 사냥하기 힘든 겨울엔 고기를 먹을 수 없었고 열심히 농사를 지을 시기엔 작년의 수확물이 여태 남아있지 않았다.
사냥꾼과 농부는 서로의 생산물을 교환하면서 혹한기와 춘궁기를 견뎌냈고 진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공존과 상생을 위해 생겨난 초기 시장에선 신뢰를 기반으로 생명을 거래한 것이다. 선물(Futures) 시장이 현물 시장보다 먼저 생겼던 셈이지만 초기 농경 사회 인류 공생의 아름다운 전통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 시절의 시장에선 약속을 지키리라는 믿음에 근거해 거래가 이루어졌다. 조개껍데기도 깨진 질그릇에 새겨진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도 서로에 대한 믿음의 징표로 주고받았다. 서로 신뢰하는 두 사람이 주고받은 약속이 거래의 전부였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나의 물고기가 너의 쌀보다 가격이 올랐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었으니 상품의 가치변동(가격변동) 위험은 아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주고받는 물건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거래의 매개로서 화폐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가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하면서 시장에선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생겼고 그에 따른 가격변동 위험을 정밀하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시간은 기회이기도 하고 위험이기도 하다. 필요한 때에 원하는 가격으로 거래하고 싶은 사람이 늘어났다.
새끼손가락 한 번 걸면 그만이던 거래 약속이 계약이란 구체적인 행위로 정착했다. 화폐와 현물이 미래의 특정 시기에 교환될 것을 전제로 계약을 맺는 선물 시장으로 확장된 것이다. 선물 거래소가 생겨났고 거래 상대방과의 약속은 거래소에서 표준화된 계약의 형태로 체결되고 이행이 보증된다.
현대 인류는 시장경제가 영원히 발전하고 확장될 것이란 믿음을 가지게 됐다.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시장에 등장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인간이 시도한 수많은 혁신과 발명 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건은 표준화된 시간이 상품과 결합하여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옵션(Option)과 스와프(Swap) 거래가 시장에 본격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자본과 기술, 욕망, 이 삼위일체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등장했다. 미래를 위한 효자손이 되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온 인류가 드디어 금융 자본주의로 진화하는 열쇠를 손에 쥔 건 분명하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금융, 자본시장의 세계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단, 파생시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만큼만.

조용래 객원칼럼니스트/前 홍콩 CFSG증권 파생상품 운용역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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