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패러독스]<10> 홍콩 H지수 연계 파생증권, ELS의 ‘공포’-下
2024-02-29
자본시장 참여자에게 리스크란, 한마디로 하자면 손실 위험이다. 혹시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예금자 보호 범위 내에선 은행 예금에 손실 위험은 없다. 이유는 은행이 제시하는 이자, ‘무위험 수익’ 그 이상을 예금자가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은행 예금을 투자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특히 저금리가 오래 유지되면 그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주식이든 채권이든 장기간 보유하면 꾸준히 투자 수익이 발생한다. 채권에선 이자가, 주식에선 배당이 나온다. 자산 손실 위험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오래 보유하고 회사의 장기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세 상승을 기대하는 건 투기라고 보기 어렵다. 투자다.
기업의 대주주가 아닌 한, 주식시장에 투여하는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자본은 한 회사의 주식만을 사는 게 아니라 시장 포트폴리오에 투자하는 것이다. 개별 기업의 성장과 그 주식의 시세 차익뿐 아니라 국가의 경제 성장과 기대 수익률이 겹친다. 그래서 우리 시장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장의 ‘체계적 위험’ 상황 즉, 시장의 변동이 커지고 위험을 회피할 수단이 곤궁해지는 경우 자본은 시장을 떠난다. 떠나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 ‘비체계적 위험’(시장 자체의 변동이 아닌 개별 자산의 가격 변동 위험)에 노출되고 그 위험이 큰 폭의 포트폴리오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커질 때도 자본은 시장 이탈을 고민한다.
공매도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측에선 시장조성자(Market Maker)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에겐 공매도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빼놓지 않는다. 적은 물량으로 시장에 진입과 청산을 빠르게 할 수 있는 개인에 비해 덩치가 큰 자본은 손실 위험에 즉각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도 하다. 위험을 느끼는 큰 자본의 이탈을 막기 위해선 개별 주식의 가격 위험을 회피할 수단, 공매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주가 하락 위험을 회피할 수단이 기관이나 대형 자본에게만 필요한가. 거칠게 이해하자면 “개미들은 덩치기 작아서 쉽게 빠져나갈 수 있으니 알아서 대처해라. 우리는 공매도를 하겠다”가 아닌가. 공매도가 초기의 목적과 다르게, 투기적으로 또 다른 수익 창출 방식으로 이용되고 있는 건 사실이 아닌가. 대형 자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허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절대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에겐 불평등한 선택을 강요하는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공매도는 파생상품과 마찬가지로 시장 위험 회피 전략으로 고안된 하나의 산물이다. 그런 공매도를 큰 손 투자자에게만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건 당연히 형평에 맞지 않는다.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 안에서 이해 충돌이 일어나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자본시장 전체의 안정성 측면에서 설사 그것이 대형 자본가의 투기 수단으로 전용되는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매도 제도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온전히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 멋진 공매도를 누구나, 개인도, 소액 투자자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사실 공매도를 절대 할 수 없도록 법으로 막아 놓은 건 아니다. 하지만 개인들에겐 시장 접근성(Market Accessibility)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차입 공매도와 무차입 공매도를 놓고 어느 것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지는 것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어차피 그것을 가려 줄 공정한 관찰자가 우리 자본시장엔 없다.
진짜 문제는 평등한 제도가 없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평등이 되기 위한 기본적 환경이 평등하지 않다. 그래서 공매도 금지 요구가 허무하게 들리기도 한다. 공정하고 평등한 경쟁의 원칙을 원하는 개미들이라면 자본시장에 참여하기 전에 정치를 먼저 바꿔야 하는 게 아닐까.

조용래 객원칼럼니스트/前 홍콩 CFSG증권 파생상품 운용역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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