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72> 월야유정(月夜有情) ③
2025-10-01
결혼을 하던 1955년 당시 부인조차도 남편이 가수인 것을 몰랐고,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부인은 “신랑이 가수인 것을 알았다면 혼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당시는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비하하며 마땅찮은 눈길을 보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친의 예능을 물려받아 가수가 된 아들 동준 씨는 그때도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손인호는 잘 생긴 미남형의 얼굴에 정감있는 목소리를 지닌 미성(美聲)의 가수였다. 보릿고개가 엄존하던 시절 국민의 최고 오락수단이던 라디오와 스크린을 모두 장악하며 ‘소리의 마술사’라는 별명까지 지녔던 사람이다. 손인호의 직업은 영화 녹음기사였다. 가수로 발표한 노래도 150여 곡에 이르렀지만, 녹음기사로 녹음 작업을 한 영화는 2천여 편이 넘었다. 대종상 녹음상만 일곱 차례나 받았다.
본명이 손효찬인 그는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창성 출생이다. 수풍댐 건설로 일가족이 만주로 이주했다가 해방 후 신의주로 돌아왔다. 평양에서 열린 노래자랑대회에 서 장원을 하며 심사위원의 권유로 서울로 내려왔다. 작곡가 김해송이 이끌던 KPK악단의 가수 공모에 다시 1등을 하며 악단생활을 시작했다. 윤부길이 이끌던 부길부길쇼단에서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나는 몰랐네 나는 몰랐네 저 달이 날 속일 줄...’로 시작하는 ‘나는 울었네’는 1954년 박시춘이 작곡한 데뷔곡이자 첫 히트곡이다.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눈물겨운 그리움을 가슴을 저미는 애절한 목소리로 토로하며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목이 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사랑이란 이런가요 비 내리는 호남선에, 헤어지던 그 인사가 야속도 하더란다’.
호남선의 이별과 정한을 담았던 ‘비 내리는 호남선’은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 신익희의 호남선 유세 중 급서(急逝)와 맞물렸다. 국민의 정치적 좌절감까지 달래는 명곡으로 거듭난 것이다. ‘하룻밤 풋사랑’과 ‘울어라 기타줄’은 ‘하룻밤 풋사랑에 이 밤을 새우고...’와 ‘낯설은 타향땅에 그날 밤 그 처녀가...’라는 노랫말 첫 소절부터 야릇한 정서적 교감을 이루는 매혹적인 선율의 가요이다.
‘한많은 대동강아 변함없이 잘 있느냐, 모란봉아 을밀대야 네 모양이 그립구나, 철조망이 가로막혀 다시 만날 그때까지, 아~ 소식을 물어본다 한많은 대동강아’.
북녘에서 내려온 월남민의 망향가인 ‘한많은 대동강’은 한복남이 작곡을 해놓고 ‘손인호가 꼭 불러야 한다’며 3년을 기다리다가 1958년 발표를 했다고 한다. 실향민인 손인호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호소력있는 음색을 기대했을 것이다.
손인호가 브라운관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데뷔한 지 50년만인 지난 2001년이었다. 75세의 나이에 KBS 가요무대 특집방송 ‘얼굴 없는 가수 손인호 편’에 출연한 것이다. 2003년 뒤늦게 연예협회 가수위원회에 입회하며 77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수에 적을 올렸다. 40여 년만에 신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영화 녹음기사라는 본업을 가지고 있어서 노래를 취미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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