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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르네상스]<10> 분단의 아픔을 토로하다

분단의 신음 드러낸 남인수의 ‘가거라 삼판선’
일제 벗어났으나 자주독립 국가 염원 ‘좌절’
하나의 조국·산천 염원 그린 노랫말의 울림
한양경제 2024-01-23 16:34:45
‘아~ 산이 막혀 못 오시나요. 아~ 물이 막혀 못 오시나요. 다 같은 고향땅을 가고 오련만. 남북이 가로막혀 원한 천리길...’ 

전설의 가요 황제 남인수가 금속성(金屬性) 음색으로 호소한 트로트곡 ‘가거라 삼팔선’은 분단의 통점(痛點)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절창(絶唱)이다. 남인수의 해방 후 첫 발표곡이기도 했던 이 노래야말로 두 동강 난 국토의 요통(腰痛)으로 신음하는 겨레의 호곡성(號哭聲)이었다.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면서 온전한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민족의 염원이 기어이 좌절된 것에 대한 탄식이었다. 예견된 비극이었다. 스스로 이루지 못하고 강대국에 의지해 얻은 광복이 잉태한 업보였다. 그것이 결국 화근이 되었다. ‘가거라 삼팔선’을 절규한 남인수의 통곡이 참담한 전란의 예광탄이 된 것이다. 대중가요는 그렇게 전란의 징후까지 감지하고 있었다. 

광복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 한반도는 미·소 강대국의 분할 점령에 따라 38선이 획정되고 극한 이념적 대립 속에 남북한 분단 정부가 수립됐다. 이때 국토와 민족의 분단 현실과 아픔을 토로한 가요가 유행했는데, 남인수가 부른 ‘가거라 삼팔선’과 ‘해도 하나 달도 하나’가 그것이다. 노래는 차라리 겨레의 가슴 밑바닥에 시퍼렇게 도사린 피멍처럼 통증을 환기시켰다. 

다 같은 조국땅이건만 삼팔선이 가로막혀 남과 북을 오가지도 못하는 통한의 곡성이었다. 삼팔선은 생사와 운명의 경계였다. 우리 현대사의 질곡이었다. ‘가거라 삼팔선’의 노랫말이 웅변하듯 ‘남북이 가로막힌 원한 천리길’이었다.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당시 언론도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삼팔선이 깨져야 진짜 독립이 되는 것’이라며 민중의 한(恨)과 원(願)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다.

‘가거라 삼팔선’은 국토를 양단(兩斷)한 ‘삼팔선’이란 비탄의 족쇄를 걷어내고자 했던 대중의 애원을 이부풍이 가사로 옮기고 박시춘이 곡을 얹은 것이다. 그것은 강요된 분단에 대한 저항이었다. 비극적 운명에 대한 한탄이었다. 그러나 그 삼팔선은 오늘도 지구촌 마지막 분단국가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오랜 세월의 파란을 머금고 이제는 핵전쟁의 전운(戰雲)마저 드리운 도화선으로 곤두서 있다. 

남인수가 잇따라 내놓은 ‘달도 하나 해도 하나’(김건 작사·이봉룡 작곡)도 분단이 초래한 민족의 피울음이었다. 전쟁이 벌어지자 남한의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좌익분자’ 수천명을 떼죽음으로 몰아가는 참상이 벌어졌다. 전쟁 중에 이들이 언제 적으로 돌변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어느 즉결처분 현장에서는 이 노래가 최후의 진술처럼 합창으로 흘러나왔고, 곧이어 총성이 작열했다고 한다. 

노랫말 그대로 조국도 하나요, 산천도 하나인 겨레의 젊은이들끼리 서로 짐승처럼 죽이고 죽는 만행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을 위한 집단학살이고, 무엇을 위한 비명횡사였던가. 무장을 하지 않은 민간인과 아녀자들까지 이유도 모른채 죽어갔다.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어설픈 이념과 사상의 노예가 되어 벌인 참극이었다. 남북한과 좌우익 모두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군인보다 민간인 사상자가 더 많았던 전대미문의 동족상잔이 끝난 지 70여년. 삼팔선은 휴전선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옥죄며 언제 불붙을지 모르는 화약고로 엄존하고 있다. 지금도 남북은 총부리를 겨눈 대치 상태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남남갈등’이다. 동서로 나뉘고 좌우로 갈라져 서로를 척결해야 할 원수로 여기고 있다. 국민을 갈라치는 또 하나의 삼팔선이다.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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