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르네상스] <50> 작곡가 박시춘과 손목인
2025-04-24
오기택이 노래한 경쾌한 가락의 ‘아빠의 청춘’은 1960년대 당시로서는 아버지를 주제로 한 드문 대중가요였다. 많은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로도 인기를 누렸다.
자식을 위해 재혼도 마다하고 헌신적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애환을 그렸던 영화의 주제가 ‘아빠의 청춘’은 30년 후에 되살아났다. 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경제난으로 직장에서 쫒겨난 아버지들의 어깨가 한없이 위축되었던 시절, ‘아빠의 청춘’이 부활한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부권상실(父權喪失)이라는 사회적 현상과도 맞물렸다. 어려운 시절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해 온 아버지에 대한 위로였다.
언제나 자애로운 표정과 표현으로 자식을 위하던 어머니와 달리 상대적으로 엄격하고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던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해서는 대중가요도 그저 침묵한 시절이 많았다. 문학사로 보더라도 고려가요에서 비롯된 ‘사모곡’의 변주는 다양했지만 아버지를 주제로 한 문학작품도 드물다. 2000년대 이후의 소설로는 조창인의 ‘가시고기’와 신경숙의 ‘아버지에게 갔었어’가 떠오른다.
소설 ‘가시고기’는 백혈병에 걸린 아들의 치료를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골수이식 수술비 마련을 위해 눈(각막)을 팔고 쓸쓸하게 죽어가는 숭고한 부정(父情)을 ‘가시고기’라는 민물고기 수컷의 헌신적인 생애에 비유한 작품이다.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자식들을 위해 숱한 고난을 묵묵히 견뎌내 온 늙은 아버지의 삶을 자신 또한 부모의 입장이 되고서야 공감하는 딸의 애틋한 고백이다.
이수익 시인은 혹한에 꽁꽁 언 강 표면을 아버지의 잔등에 비유했다. 품안의 여린 물살을 지키기 위해 하얗게 얼어붙은 사랑과 헌신을 ‘결빙(結氷)의 아버지’로 읊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아버지마저 잃어버린채 살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아버지는 죽었다’고 했다. ‘아버지 부재의 시대’에 휩쓸린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였다. 21C 정보화의 시대를 맞아 ‘아버지의 추락'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세월따라 ‘가시고기 아버지’가 더러는 ‘기러기 아빠’로도 변신을 했지만, 부정이 머금은 그 함묵적 내면 풍경은 여전하다. 자녀의 해외 유학을 위해 아내까지 외국으로 보낸 후 혼자 돈을 벌어 부치면서, 어쩌다 한 번씩 가족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는 철새여서 ‘기러기 아빠’인 것이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않아 명절이나 휴가철에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수 없는 경우는 ‘펭귄 아빠’라고 부른다.
아버지 그 쓸쓸한 실루엣은 경북 영주 출신 가수 이태호가 부른 ‘아버지의 강’에서 유장한 트로트의 선율에 드리워졌다. 1989년 아날로그 시절에 나온 ‘아버지의 강’이 오늘 스마트 시대에 부활한 것은 트로트 열풍 덕분이다. 원로 가수 나훈아가 지은 노랫말 속 강바람에 스민 억새의 속울음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소환한다. 아버지 상실의 시대여서 더 가슴 뭉클한 사부곡(思父曲)이다.
‘온 동네 소문났던 천덕꾸러기, 막내아들 장가 가던 날, 앓던 이가 빠졌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우리 아버지…’
‘막걸리 한 잔’은 2019년 가수 강진이 불러 히트한 노래로 2020년 미스터트롯 본선에서 영탁이 불러 다시 유명해진 곡이다. 아버지에 대한 막걸리 같은 그리움과 회한의 음유이다. 세대를 초월한 화해의 감성이 한 잔 술에 녹아 있다. 막사발 같은 아버지의 삶이다. 아~ 아버지…!

조향래 대중문화평론가
댓글
(0) 로그아웃